월호리

월호리 망월동(望月洞)

월호리망월동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동복오씨가 입향하였고 이어 무안박씨와 남원양씨가 입향하였다 하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 마을 어귀로부터 마을 안에 이르기까지 당산나무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당사골(堂祠谷)"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흉년과 가뭄으로 비 오기만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마을 옆에 있는 월출봉(月出峰)에 올라가 옛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을 쳐다보고 천문을 연구하며 천기를 점치기도 하고 장마와 가뭄을 이야기 하면서 달뜨는 시간을 기다렸다 하여 "망월동(望月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또한 일설에는 마을 옆 월출봉에서 달을 관찰하여 풍년과 흉년, 가뭄과 비올 때를 알아냈다 하여 "망월동(望月洞)"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기도 한다.

월호리 배야(背野)

월호리배야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전주이씨(全州李氏) 응주가 입촌하여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주이씨는 없다. 그 후 무안박씨(務安朴氏)와 상산김씨(商山金氏)가 입촌하였으며 이곳에는 옛 진례면의 경찰주재소, 면사무소와 관사, 그리고 시장(市場)이 있었다. 금송평야(錦松平野)에 등져있는 평야(平野)라는 뜻이 담겨져 있어 마을이름을 배야(背野)라고 했다고도 하나 그보다는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영산강 중류를 고려 때는 곡강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물이 지세에 등져 흐르기 때문이었다는 설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곡강의 배류지가 바로 마을 앞이며 배류지를 끼고 있는 평야라는 뜻으로 마을 앞의 평야를 배야(背野)라 했고 마을 이름도 배야(背野)라고 하였다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월호리 기동(基洞)

월호리기동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추계추씨가 들어왔다고 하나 현재 그 후손은 1호도 없으며 그 후 나주김씨와 이천서씨가 들어와서 마을을 형성하며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옛날에 어떤 도사가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사방이 조그만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 마을 터로서는 아주 좋은 터라고 하였다 하여 마을명을 "기동(基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옛날에는 영산강과 접해있는 마을이라 하여 임강촌(臨江村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했다.

월호리 용호(龍湖)

월호리용호

고인돌 등의 문화유적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나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남원양씨가 무오사화 때 경기도 시흥군 부곡면에서 망월동(望月洞)이란 마을에 은신을 목적으로 왔다가 자손들이 번창하자 용호(龍湖)마을로 이주하여 남원양씨촌을 형성하였으며 현재도 이 마을은 몇 호를 제외하고는 남원양씨가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망월동(望月洞)이란 마을에서 새로운 터로 이주하였다 하여 한때는 마을 이름을 신기(新基 1789년 호구총수지명)라 했다가 앞산(고문산) 및 영산강 줄기인 호수에서 용이 살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용호(龍湖)"라고 하였다 한다. 용호는 속금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이 마을에서 강 건너 동남쪽으로 보이는 곳이 나주군 공산면 덕음 광산이고 남서쪽은 고문산이며 강 안쪽 함평땅은 옥수봉이다. 이처럼 사방이 산으로 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어서 영산강 하구언 공사 이전에는 영산강이 범람하면 이곳은 마치 호수를 방불케 하며 가물면 강물이 바닷물처럼 짰었다고 한다. 현재는 민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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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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