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사거리 명암(銘巖)

사거리 명암(銘巖)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김해김씨가 입향하여 김해 김씨촌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많은 성씨가 살고 있다. 옛날 이곳이 무안군 좌촌면에 속해 있을 때 정부양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고 무안군에서는 동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동창(東倉)"이라는 별호가 명암이라는 본명보다 더 널리 불리었다(창터는 현 학다리 중, 고 뒷산).

사거리 경화동(京化洞)

사거리 경화동(京化洞)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충주지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현재 충주지씨는 몇 호에 지나지 않고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다. 처음에는 "잡각동(雜角洞)"이라 불러오다가 서울이 될 거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경화동(京化洞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하였다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우측의 구릉이 천동무학의 터라고 하는데 1970년도에 영창국민학교가 여기에 설립되어 풍수지리설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농산물 저온 창고인 호남물산이 근년에 세워져 농산물 저장에 편리하게 되었다.

사거리 율동(栗洞)

사거리 율동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파평윤씨가 입향하였고 진주정씨와 나주김씨가 뒤이어 입향하여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다. 300여 년 전에 밤나무가 마을 어귀에 있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율동(栗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밤나무가 고목이 되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율동은 낙천동과 율동 두개 마을을 말하는데 낙천동에는 함평현감이 부임할 때 꼭 들러 가는 이름난 서당이 있었다고 전하나 서당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거리 청정(靑亭)

사거리청정

고려시대에 함평이씨가 입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후 여러 성씨가 이주 정착하였는데 자세한 입향 유래를 알 수가 없으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목포부 좌촌면에 속했으며 조선조 초기에는 "화정" 또는 "비정", "신경동(新慶洞 1789년 호구총수지명)"으로 불리었으며 1912년 이전부터 "청정(靑亭)"이라고 하였다. 이 마을에는 전 좌촌면의 면사무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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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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