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정리

죽정리 정자동(亭子洞)

죽정리정자동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진주정씨가 입향하였고 200여 년 전 한양조씨가 입향하였으며 후에 여러 성씨가 입향하였으나 현재는 진주정씨가 마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이조 선조 때 양반이 많이 사는 마을이며 죽정리에서 으뜸이라고 해서 "상곡(上谷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고 마을명을 해오다가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가 많이 있을 뿐더러 망우정이란 정자가 건립되면서 마을 이름을 "정자동(亭子洞 1912 행정구역개편 지명)"이라고 하였다 한다. 본래 이 마을은 무안군 좌촌면의 지역인데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에 편입되었다.

죽정리 덕산(德山)

죽정리덕산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압해정씨가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200여 년 전 나주김씨 김박환이란 사람이 무안읍에서 이주 입향하였으며 뒤이어 행주기씨, 광산김씨, 기타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뒷산이 덕 있게 생겼다 하여 "덕산(德山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고 나주김씨(羅州金氏) 김박환이라는 사람이 마을 뒤에 큰 산이 없으므로 멀리 있는 산의 덕을 보아야 하며 또 모든 마을민이 덕을 베풀며 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덕산(德山)이라고 하였다 하는 설도 있다.

죽정리 선암(仙岩)

죽정리선암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한양조씨가 입향하여 촌락을 형성하였다고 하나 오늘날 그 후손은 없고 평산신씨와 나주임씨 등 성씨가 모여살고 있다. 이 마을 뒷산에 신선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서 마을 이름을 "선암(仙岩)"이라고 하였다 한다.

죽정리 둔기(屯基)

죽정리둔기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박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마을이 몰살당하고 이어서 충주지씨가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도 지씨가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군인들이 군막을 치고 있었던 곳이어서 마을 이름을 "둔기(屯基)"라고 하였다 한다. 1914년 이전까지는 목포부 좌촌면이었다.

죽정리 후동(後洞)

이 마을은 50년 전 김윤의가 대동면 강정에서 이거 정착한 후 생긴 마을이다. 죽정리에서 가장 후에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도 후동이라고 한다.

죽정리 호암(虎岩)

죽정리호암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함평노씨가 입향한 후 함평이씨와 고령신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는 많은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이 마을 뒷산에 범(虎) 형상을 하고 있는 범 바위가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호암(虎岩)"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 마을은 1914년 이전에는 목포부 금동면이었다.

이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페이지 만족도 조사
관리부서
기획예산실
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