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리

수하리 화전(花田)

약 500여 년 전에 마산마을에 살던 진주강씨(晋州姜氏)가 제일 먼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다는 설이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지금은 죽산안씨(竹山安氏)가 마을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을 뒷산의 형국이 개가 누워 있는 형국이고 마을 앞 밭에 꽃이 많아 "화전(花田)"이라 했다는 설과 마을 뒷산에 화심혈(花心穴)이 있어 "화전"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수하리 마산(馬山)

약 600여 년 전에 서씨(徐氏)가 처음 입주하였고 300여호 이상의 큰 마을을 형성하여 여러 성씨가 거주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안터(內基)골 큰 뫼(大山)에 서장군 묘라는 무덤이 있고 또 절골에는 말 무덤이 있다 한다. 일제 때 그 무덤에서 칼 2자루가 출토되었는데 그 칼은 당시 나산 주재소에서 가져갔다고 전한다. 당초에 입주한 성씨는 현재 한가구도 없으며 200여 년 전에 풍수지리학에 능통한 무안박씨(務安朴氏) 박화진(朴華震)이 곳곳을 방랑하다가 이 마을을 적지로 생각하고 정착하였다 하며 현재도 그 후손(朴洞銖:나산부면장)들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뒷산인 국사봉(國駟峯)을 이어 매봉산을 주령으로 하여 봉만과 골짜기가 많은데 산의 형태가 말 형국과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마산(馬山)"이라고 했다고 하며 1789년 호구총수에는 마흘산(馬屹山),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마흘(馬屹)로 표기되어 있다.

수하리 장재(長才)

약 250여 년 전에 함평에서 살던 인동장씨(仁同張氏)가 개촌(開村)했다고 하며 1770년대에 고창에서 살던 남치엽(南致曄 1744~1803)이 이거 정착했다. 마산, 화전에 비해 제일 늦게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옛날 말뫼(馬山)에서 이 마을로 오는 도중 재(峙)가 너무 길어 장재(長峙)라 했는데 좋은 뜻이 담긴 "才"자로 바꾸어 표기했다고 한다.

수하리 백인(白仁)

인근 주변에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주거지가 형성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부터 이곳에 백자기를 만들던 이주민이 정착해 살았다 하는데 지금은 한 세대도 살지 않고 타지방으로 이주해 갔으며 현재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인근 마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지금도 마을 뒤에서 나는 고령토는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을 앞산 국사봉을 주봉으로 하여 여러 개의 봉이 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이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시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여기 뒷산에서 나는 고령토로 백자기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백인동(白人洞)"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고쳐서 "白仁洞"으로 쓰고 있다. 지금은 흙의 가치만 인정할 뿐 후계자도 없고 누가 그릇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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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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