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환국

독립국을 향한 독수리 작전

독립국을 향한 독수리 작전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광복군과 중국에 파견된 미국 전략 사무국은 광복군을 국내로 잠입시켜 첩보와 파괴 공작을 벌일 수 있는 단기간 비밀 첩보 훈련 실시에 합의하고 '독수리작전(The Eagle Project)' 이란 이름으로 국내 진입작전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들은 1945년 5월 부터 중국 시안(西安) 근교 두곡(杜曲)과 푸양(負陽)에서 3개월 과정의 OSS훈련을 받고, 8월 4일 1기생의 훈련이 완료되었다. 이에 임시정부는 당시 중국내 OSS책임자인 도노반(Wiliam J.Donovan)소장과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이들을 국내애 침투시키기로 합의하였으나 8월15일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광복군의 국내 진입작전은 작전의 실현여부도 중요하지만,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자주적으로 쟁취 하려는 한민족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독립과 환국

1945년 8월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은 36년간의 식민치하를 벗어난다는 기쁨과 함께 임시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무산되었다는 안타까움을 모두 가져다 주었다. 임시정부는 1945년 9월 조속한 환국과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방향과 다짐을 발표하고, 그해 11월 23일 온 국민의 환영 속에 27년간의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환국하였다.

1945년 11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성대한 환송식을 받고 충칭을 떠난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거쳐 11월23일 환국 하였다. 이어12월 2일 임시정부 2진도 환국하자 12월1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임시정부 환국 봉영회가 열려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임시정부는 환국 직후부터 분단된 국가를 통일하여 완전한 독립 국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이러한 통일 정부 수립은 실패하였으며 남북한 모두 단독 정부를 수립함으로서, 남북한 양측 모두의 정치 세력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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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0-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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