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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후기

함평여행 최고추천지!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독립운동역사관
작성자 : 조윤수 작성일 : 2024-08-17 18:16 48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독립운동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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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철 선생님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로 일강 김철선생님.기념관에 도착했을때 좀 놀랐다. 사실 오면서 첫째에게 아시는 분인지 물어보니 첫째가 모른다고 해서 누굴까하는 궁금증에 왔다. 그런데 전시관이 내 생각보다 너무 큰 규모로 너무 깔끔하게 세워져있었다.

이 곳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철과 중국 상하이에서 청년운동을 주도한 김석이 태어난 곳이다.



"김철(金澈,1886~1934)은 1917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이듬해 신한 청년당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초에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로 파견되었다.

1919년 4월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이래 법무장·군무장·재무장 등 국무위원을 역임 하였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창당을 주도하며 임시정부를 지지 옹호하기 위해 힘썼다.

김석(金皙,1910~1983)은 1923년 숙부인 김철의 부름을 받고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상하이에서 한인청년당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함평군은 두 사람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일강김철 선생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우리는 김철 선생님을 모르는 상태라 누구시지? 하면서 가는데 마침 어떤 분이 말을 거시고 담당자 같아서 무작정 "어머 해설해주실 수 있으세요?"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런데 "아 그럼 해설해 드려요?"하고 말씀하셔서 음? 했는데 알고보니 정말 해설사 선생님이셨다.


김철 선생님 기념관에 같이 들어선다.







김철선생님은 독립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고 실제 재산을 털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장소를 임대하셨다.

김철선생님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을 알고 투쟁하겠다는 생각에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1917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한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시 교통차장에 임명되었으며 1926년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군무장으로 군사활동을 관장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신 분인데 너무 아쉽게도 1934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셨다. 현재 묻힌 곳이 개발되어 시신도 못 찾아 그 지역의 흙을 모아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해설사선생님은 김철선생님이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너무 일찍 요절하셔서 라고 안타까워하셨다. 나역시도 불꽃같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김철 선생님의 인생을 들으며 많은 분이 김철 선생님을 통해 감동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김철선생님을 모신 곳에서 가족이 다같이 머리숙여 감사함을 전해본다



사당 옆쪽에는 김철선생님의 묘가 있고 김철선생님의 첫부인이 목을 매 순절한 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는 일강 김철선생의 부인이신 김해 김씨가 목을 매 순절하신 나무로 순절소나무 또는 단심송이라 불려지고 있다.



지난 1917년 조국광복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신 일강 김철선생께서 부인(김해 김씨)에게 "나는 조국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이 한몸 조국에 바쳤으니 더 이상 찾지도 기다리지도 말고. 부인께서는 앞날을 알아서 처신 하시오"라고 서신을 보내셨다.



당시 부인을 향한 일제의 감시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부인은 "부군이신 선생께서 가족 걱정없이 오로지 독립운동에 전념토록 하기 위해서는 죽는 길밖에 없다"라고 결심하시고 이곳 소나무에 목을 매 자결하셨다고 한다.





김철선생님 묘 앞쪽에는 상하이임시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인 대한민국임시정부독립운동역사관이 있다. 굉장히 역사적으로 뜻깊고 울림을 주는 곳인데 이곳도 홍보가 덜 된 거 같아 안타까웠다.








회의실도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당시 임시정부가 중국 건물이라서 화장실이 층계밑에 노출되어있다. 예전엔 커텐이라도 있었냐고 여쭈자 중국 안가봤냐고 거긴 대놓고 용변을 본다고 말씀해주신다. 과거 중국 화장실에서 칸막이가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 했다.

용변기 바로 옆에는 계단 밑에 목욕탕이 있다.


지금과 태극기 모양이 조금 달랐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

이곳이 김구선생님.방인데 안쪽에 침대도 있고 개인책상, 수납장도 있다.






윗층에는 김구선생님을 제외한 독립운동가들의 침실이 있다. 김철선생님도 여기에서 묵었다고 한다.


함평에도 다양한 독립운동가가 계셨는데 24명의 이름이 써진걸보고 숲이가 탄성을 지른다. 마지막 이름이 "윤의병"님이다.일본군에게 정체숨기기 어려웠을것 같다.



김철선생님 기념관을 들리기 전에는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지 몰랐고, 이렇게 울림을 받을 공간인지 몰랐다. 아쉬운 점은 이 곳의 중요성보다는 방문객이 없는 것 같다. 부디 많은 분들이 찾아서 일본의 잔악한 통치 속에서도 끝까지 아름다운 청년들을 기억해주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고마움을 새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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