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리

계림리 시목(枾木)

야산이었던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함평이씨로 이석헌(李錫憲)이 1800년대 말경 월야면 정산리 서촌 마을에서 옮겨 왔다. 그 후 마을 앞 들판에 와촌(瓦村)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왜촌(倭村)이라 부르던 곳으로 1901년(辛丑年) 홍수로 인해 거주하기가 어려워지자 맨 먼저 흥성장씨 장성오(張成五) 일가족이 옮겨 왔으며 그 후 연차적으로 천안전씨, 청송심씨, 제주양씨 등이 그곳에서 옮겨왔다. 와촌마을은 6·25사변 이후 폐촌됐으며 마을 앞 도노들은 1972년과 1973년에 경지정리가 되었다. 일제 때 이 마을에 일본인 1호가 살았다 한다. 감나무가 많아 "시목(枾木)"이라 했다하나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는 이 마을에 몇 그루 밖에 없었다 하며 시목이라 하기보다는 마을 형국이 활이기 때문에 화살 시(矢)자를 써서 "시목(矢木)"이라 해야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다. 이 마을은 옛 대야면의 관할구역으로 1911년도 대야면 2기 호세장부를 보면 시목에 16호, 와촌에 4호가 거주한 기록이 있다.

계림리 주전(柱田)

언제 어느 성씨가 맨 먼저 터를 닦았는지는 전하는 바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현존 성씨 중에서는 1900년대 초경에 동래정씨, 김해김씨, 광산노씨, 현풍곽씨가 입촌했으며 상산김씨, 밀양박씨, 영성정씨, 금성오씨, 문화유씨, 칠원윤씨, 경주리씨, 남양홍씨, 죽산안씨 등이 살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행주(行舟)라는 명당설에 배를 매두는 선창가라 하여 주전(舟田)이라 했는데 지금은 원뜻과 다른 "柱田"으로 표기하고 있다.

계림리 가차(加次)

이 마을은 200년 전 전주리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그 후 진주강씨 강낙원(姜洛元)이 인근 마을인 계림리 죽림(옛 竹洞)에서 1800년대 중순경에 옮겨 왔으며 현존 성씨 중에서 김해김씨가 1900년경에, 죽산안씨가 1910년경에 입촌했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주변 일대가 달리는 배형국(行舟)이라 하는데 이 마을은 큰 배의 키(치)로 배에 키를 하나 더 달았다 해서 가치라 했다 하는데 후에 가차(加次)로 표기되었다 한다. 그런데 1789년 호구총수 명에 가차암(加次岩)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이 지명에 상당히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가치, 대치로 나뉘어 불러오다가 가차로 통일했는데 대치는 큰 배의 치라 하여 불렀던 명으로 현재 5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진사(李進士)가 살았다 한다. 이 마을은 행주(行舟)란 명당 집터가 있다 해서 집터를 잡아 부자들이 욕심을 낸 곳인데 옛적에 어느 중이 나타나 타지의 물이 마을 앞으로 흐를 때 더바람이 날 것이라 했다고 하며 영산강유역 개발로 인하여 큰 용수로가 생겨 물이 흐르게 되어 터바람이 날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계림리 죽림(竹林)

함평노씨 노택동(魯宅東)이 1700년대 중순경 함평읍 진양리에서 옮겨와 처음 터를 잡았으며 현재 그의 후손들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함평노씨 다음으로는 하동정씨가 약 90년 전에, 나주임씨가 약 70년 전에 입촌했다. 함평노씨가 터를 잡았을 때 어느 지관이 "이곳은 물버큼터이며 북풍이 강하여 살기 어려울 터이니 대나무를 심어 북풍을 막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 되었고 대숲이 죽림(竹林)이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이 마을은 원래 "죽동(竹洞 1912년 지명)"과 "죽림"으로 나누어 불리었으나, "죽림"으로 통일하였으며 1911년 대야면 2기 호세장부를 보면 죽동에 12호, 죽림에 14호가 거주한 기록이 있다.

계림리 금치(錦峙)

흥덕장씨가 300여 년 전에 입촌하여 정착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150년 전 그 후손 중에서 판관벼슬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하며 계동(桂洞)이라는 마을에서 성(成)씨가 천석꾼부자로 3대를 살았다 한다. 1912년 1914년 행정구역명을 보면 금치(金峙)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을 뒷산이 옥녀형국이고 산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부르는데 옥녀가 비단을 짜는 곳이 마을터라 하여 현재는 비단 금(錦)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금치(錦峙)"라 했다. 마을 앞 들을 옥녀가 베짜는 북이라 해서 신저골(新 谷)이라 했는데 신죽굴로도 부르고 있다. 마을내 지명중 구룡목(龜龍)은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와 접하고 있는데 거북 형국과 용 형국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 5호가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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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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