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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유산

주소
전남 함평군 엄다면 제동길 8 (엄다리)
세부명칭
곤재우득록목판
지정일
1987. 6. 1.
분류
기록유산/목판본
수량/면적
48매

기본정보


『우득록』은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중기 호남사림의 한 봉우리를 이루었던 곤재 정개청(1529∼1590년)의 문집으로 수차에 걸친 당화를 입으면서도 어렵게 보존된 귀중한 자료이다.

정개청의 자는 의백, 호는 곤재, 고성인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 천문·지리·의약·복서 등의 잡학에 힘써 강구하여 곤재라 스스로 불렀다.

그 후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사암 박순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의 너비와 깊이를 더하였으며, 명종 20년(1565)경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로 귀향하여 향리에서 후생들을 양성하였다.

그후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피체될 때 까지 20여년간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그 문인들로는 나덕준·나덕윤 등의 나주 나씨일가와 나덕원·안중묵·최홍우·송제민·정식·유양·정인·윤제·정지성이 꼽히는데 이들은 후일 정개청의 신원이나 서원 건립(제동사=자산서원) 등에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곤재를 배향한 자산서원(광해군 8년:1616 창건)은 5차에 걸친 복설과 훼철을 거듭하는, 실로 호남 사림계의 각축 혹은 당화의 생생한 자취를 남긴 유적이다.

곤재의 저서로는 『우득록』3권과 『수수기』9권 뿐이나, 그나마 『수수기』는 피체되었을 당시에 압수되었다가 분실되고 『우득록』만이 유일한 저술로 남아 있다.

『우득록』은 총 4책(총 334편의 글이 실려있는 본편 3책, 부록 상·하 1책)으로 1∼2권은 성리제설과 강의계서가 수록되어 있고, 3권에는 소답·서·제·문이 실려 있다.

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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