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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유산

주소
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06-7
세부명칭
함평척화비
지정일
1990년 2월 24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높이 135㎝, 너비 52㎝, 두께 20㎝
시대
조선시대

기본정보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함평공원에 있는 척화비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척화비는 바닷가의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함평 척화비가 건립된 당시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말로는 함평읍 석성리 구주포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뒤 1977년 함평공원을 정화하면서 군청 뒷뜰에 있던 함평척화비를 역대 함평현감, 전라도관찰사 등의 공적·선정비 19기와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비는 호패형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높이 135㎝, 너비 52㎝, 두께 20㎝이고 자경은 큰 글자가 8∼10㎝, 작은 글자가 4∼5㎝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사람들이 침범을 하면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해야 하는데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과 같다. 이를 만세자손에게 일깨워야 한다. 병인년(1866)에 만들고 신미년(1871)에 세우다(洋夷侵犯非戰則 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고 새겨져 있다.

척화비의 유래는 흥선대원군이 1866년(고종 3) 병인양요와 1871년 4월 미국함대(함장 로저스)가 경기도 남양에 침입한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뒤 외적을 배척하고 쇄국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해 1871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중요 지역에 세우도록 명령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외국 통상이 실시되면서 철거되었고 현재는 서울 경복궁 근정전 앞뜰, 전라북도 고창, 부산 등 몇 곳에만 남아 있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척화비들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화기의 역사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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