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리

용정리 송정(松亭)

함평모씨가 이 마을 서쪽에 있는 괴동(槐洞)에 처음 터를 잡았다 하며 정확한 입향년대는 알 수가 없다. 그 후 입향한 성씨는 인동장씨로 장우각(張宇珏)이 1700년대 중순경 이곳이 만인이 웅거할 터라 생각하여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 영당 마을에서 옮겨와 정착한 이래 그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함평모씨의 후손은 단 1호도 없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 형국이 학(鶴)이기 때문에 학과 관계되는 소나무를 택해 마을 이름을 "송정(松亭 1789년 호구총수명도 동일함)이라 했다. 마을 이름에 맞게 마을 앞 용정제(1966년 완공) 옆에 200년 이상 됐을 벽송 1그루가 있는데 예전에 인동장씨들에 의해서 수백 그루가 심어졌고 그 나무 위에는 많은 학이 앉았다 한다. 현재 남아있는 소나무는 나무가지가 부채살 모양으로 10여 가지로 자라나 마을에 위기가 있으면 활짝 펴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그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정월 대보름날이면 당산제를 지냈으나 몇 해 전부터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용정리 용수(龍岫)

마을 앞에 팽남제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당산제를 지내던 팽나무 1그루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을 포함 세 번의 난리를 겪었다 한다. 이로 미루어 마을 형성 시기를 4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현존 성씨 중 인동장씨가 맨 먼저 입촌했는데 인근 송정마을에서 1800년대 중순경 장현국(張鉉國)이 이천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분가하면서 이 마을에 터를 잡았으며 그 후 함평이씨 이 창헌(李昌憲)이 1853년경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에서 어머니 행주기씨와 함께 들어 왔다. 예전에는 대농소(大農所)라 불렀다하며 1789년 호구총수에 기록이 있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책자에 용수(龍岫) 마을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용수란 마을명을 사용한지는 오래돼지 않는 것 같으며, 마을 뒤 석각골에서 용이 승천했다 해서 용수라 했다 한다.

용정리 복용(伏龍)

이 마을 지명 중 냉천동(冷泉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신(辛)씨가 맨 먼저 터를 잡았다 하며 그 후 현 위치에 제주양씨 양서용(梁瑞龍)이 1700년대 중순경 광산구 박호동에서 살다가 이 마을로 옮겨와서 400년은 안주(安住)할 것이라 하여 영산신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 정착하였다. 마을 지형이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해서 엎드릴 복(伏)자와 용 용(龍)자를 써서 "복용(伏龍 1789년 호구총수)"이라 부르고 있다. 마을 앞 장성호 1호 간선 아래에 용의 꼬리라 하여 용호철이라 부르는 곳이 있으며 용머리는 인근 용수마을 쪽으로 향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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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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