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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문화유적 및 기념관 현황

함평 고막천 석교

국가지정 보물 제1372호

학교면 고막리에 소재한 석교로 일명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목조가구식을 석조형태로 바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로 만든 다리로 고막천을 동서로 가로 지르고 있고 축조연대는 고려말, 조선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산서원

엄다면 엄다리에 소재한 자산서원은 조서중기 곤재 정개청이 1589년(선조22년) 기욱옥사에 연루되어 유배지에 병사하자 그의 문인들이 건립한 사원으로 호남사림의 한봉우리이며 특히 임금이 하사한 서액사원이다. 특히 도지정문화재 제146호인 곤재우득록목판이 보관된 장소이다.

함평향교

전남유형문화재 제113호

현재 대동면 향교리에 소재한 향교는 조선시재 1631년 함평 유림 22인의 발의로 중건되었고, 그 이전에는 함평읍 내교리 외대화에 있었습니다. 정기제향은 매년 2회 거행하며 2월의 상정(上丁)과 8월의 상정에 실시한다. 상정이란 매월 1일부터 10일 사이의 간지 중 정(丁)자가 들어간 날을 뜻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67년 중수한 것으로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향사제는 대성전 뒷편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팔열부정각

전남기념물 제8호

월야면 월악리에 소재한 팔열부정각은 정유재란 때 정절을 지킨 여덟 명의 열부(烈婦)를 기리는 정각으로 조선시대인 1681년(숙종 7)에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고, 순절지인 묵방포(墨防浦)에는 순절비(殉節碑)가 세워졌다. 팔열부는 부군들이 왜군의 흉탄에 맞아 영광 삼서(森西:지금의 장성)에서 전사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영광 칠산 앞바다까지 피난하던 중 왜구의 추격을 받고 이곳에서 투신 자살했던 것을 기린 것이다.

함평 예덕리고분군

전남기념물 제55호

월야면 예덕리에 소재한 예덕리고분은 4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형성된 백제시대의 독무덤이다. 독무덤이란 사람의 시체를 독에 넣어 묻은 묘를 말하는데, 이러한 독무덤은 영산강 하류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옹관묘는 전방후원형으로 일본 고분과의 관련성등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함평 용천사석등

백양사의 말사 용천사는 정유재란(1597)과 한국전쟁(6.25)때 소실되어 그 내력을 밝힐 수가 없었으나, 조선총독부발행『조선사찰사료,1911년』에 수록된 용천사 대웅전 현판 단청기에 따르면 용천사는 당나라 현종조 때 즉 통일신라 8세기 중반경에 국행사존사(國幸師尊思)라는 사람에 의해 창건되었다. 특히 도지정문화재 제84호인 용천사 석등이 있는 장소이다. 또한 주변에 꽃무릇공원은 9월~10월에 꽃무릇이 만개하는데 가장 화려한 시기인 9월 중순경에 꽃무릇축제가 열린다.

장산들 백비

지역설화

먼 옛날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홀 어머니 한분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노모는 병을 앓아 누워 계시면서 망령이 들어 하나밖에 없는 어린 손자가 눈에 보일 때마다 개로 보였던지 잡아서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부부가 의논 끝에 서로 위로하면서 홀어머니의 여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사랑스런 자식을 어머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참으로 비장한 결단이었읍니다. 차마 못할 짓인 줄 알면서 창자를 끊는 아픔을 누르고 귀여운 아들을 솥에 넣고 불을 지피다가 솥뚜껑을 열어 본 즉 애는 간 곳이 없고 거기에 커다란 동자삼 한 뿌리가 삶아져 있었습니다.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마침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마을에서 놀다가 돌아오면서 어머니를 부르지 않겠는가. 부부는 너무도 감격해서 아들을 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효심에 감동한 하늘이 아들을 동자삼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그 동자삼을 잡수신 어머니는 병이 나아서 오래 오래 살았고 그 효자 부부도 귀여운 아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백비를 내린 까닭은 어머니에 대한 효행은 갸륵하나 인명을 소홀히 한 죄 또한 묵과할 수 없어 백비를 내렸다 한다. 그 백비가 신광면 계천리 계월 마을 앞 장산들 논두렁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7년 5월에 사동입구로 옮겨 놓음으로써 귀감이 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일강김철선생 기념관

일강 김철선생은 1886년 10월 15일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고 경성법률전수학교를 거쳐 일본명치대학 법학과를 1915년 졸업하셨습니다. 귀국하여 집안의 소작인들에게 농토를 나누어주고 노속들을 방면하신 후 고향에 은거하던 선생께 조선총독부에서 일제통치에 협력해 달라는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단호히 뿌리치시고 1917년 조선광복을 위하여 상해로 망명 독립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1919년 잠시 귀국하여 3.1운동거사 모의하고, 당시 천석군이었던 가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하셨으며, 상해 임시정부수립을 시작하고 임시정부의 군무장, 재무장, 국무원 비서장등 국무위원을 역임 하셨고, 1932년도에는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주도하신 분 중에 한분이셨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지난 99년부터 2003년까지 국도비 포함하여 21억 7천만원을 투입하여 사당, 동상, 기념관, 수양관, 관리사 등을 건립하여, 2003년 6월말에 개관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의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함평군립미술관

함평읍 내교리 엑스포공원내에 소재한 함평군립미술관은 문화예술 향유와 교육기회의 장으로 2011년11월3일 개관하여 현재 우리고장 출신 오당 안동숙화백께서 기증하신 120점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최근 지역출신 작가 작품을 기증받아 전시를 하는 등 지역민들에게 예술적 체험과 감동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을 한층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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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11-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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