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리

석창리 석계(石溪)

석창리 석계

본래 마씨의 터라고 전해오는 이 마을에 현재 마씨는 살지 않고 1789년의 호국 총수 지명에는 기사리 동변(箕士里東邊)으로 표기되어있다. 경주최씨 최만희(崔万熙)가 1690년경에 입촌하여 자작일촌이 되었으나, 백 년 전에 죽산안씨 안숙환(安淑煥)과 경주김씨 김학장(金學章)이 입촌하여 지금은 최씨, 안씨, 김씨 등이 살고 있다. 함평읍 석성리 석두를 돌머리라 하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석두와 마주보는 이 마을을 돌꼬리(돌고지)라 하였는데 산맥의 흐름을 볼 때, 군유산과 두류봉으로 이어져 이 마을 돌꼬리로 유유히 뻗어 나가 바다에 빠져버리는 듯한 시냇물같은 형국이라 하여 "석계(石溪 1914행정구역개편이전지명)"라 부른다고 전해온다.

석창리 해창(海倉)

석창리 해창

말과 관계되는 전설이 많은 이 마을은 5백여 년 전에 마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 하나 그 후손은 없고 250여 년 전에 경주최씨, 밀양박씨가 들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조 때 밭곡식 조세분을 보관하던 해창(바닷가창고)이 있어 마을 이름을 "해창"이라 하였다 한다. 1789년의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이 마을은 해창 동변(海倉 東邊) 해창 서변으로 불렀다. 이 마을은 서해의 함평만에 위치한 마을이며 마을 뒤에 두류봉이 있는데 말마산이라고도 한다.

석창리 대발(大發)

석창리 대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곳 산골에 비룡산천이란 명당자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 명당자리 덕분에 자손이 크게 번창해 왔고 부귀영화를 누려온다고 했으며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살기 좋고 아름다운 마을로 크게 발전해 가자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대발(大發)이라고 불렀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에 죽동(竹洞)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대밭 마을의 듯이 있어 생긴 이름인 것 같다.

석창리 농암(農岩)

1933년 삼양사에 의하여 간척지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이때를 기하여 생긴 마을이 이웃마을인 대덕, 해안, 농암등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전해 내려오는 마을 유래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농암(農岩)이라는 어원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마을과 농토 주변에 많은 바위가 깔려 있는 마을이라 하여 농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석창리 대덕(大德)

석창리 대덕

이웃 마을인 농암, 해안과 함께 1933년 간척답이 생긴 후 새로 형성되어진 마을이다. 이곳 대덕마을은 석계마을과 같이 관리해 오고 있으며 바로 석계마을의 댄등(잔등) 마을이며 대덕(大德)이라고 표기 하고 있다. 마을 남쪽으로 함평만을 끼고 있어 주민일부가 굴 양식 등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석창리 해안(蟹眼)

석창리 해안

1933년 삼양사에 의해 간척지 개발이 있은 후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인근 마을과 같이 바다를 끼고 있어 주민 일부가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마을의 생김생김이 바다게 눈형국이라 하여 속칭 기눈골(기누꼴)이라 부르며 여기에서 유래되어 해안(蟹眼)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1986년 마을 옆의 밭을 논으로 바꾸다가 주거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회로 다져 만든 굴을 발견한바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본다면 연구 검토되어야겠지만 옛날에 마을이 형성되어 번창했다가 폐촌된 곳이 아닐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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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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