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암리

죽암리 죽림(竹林)

죽암리 죽림

대나무가 우거져 있어 "죽림"이라 하였고 전설에 의하면 궁들에서 활을 쏘던 새날골등의 새가 날아 죽림으로 들어와 살게 되는 형국이라 한다. 1941년 주포간척사업 이전에는 배가 마을 입구에까지 닿게 되어 해상교통의 시발점이라는 지리적인 조건과 토질관계 등으로 약 300년 전인 조선 숙종 때부터 옹기 제조업이 시작되었는데 전성기에는 멀리 제주도의 상선까지 드나들어 주변의 주막이 흥청거렸으며 점차 그 기술이 발달하고 무역이 활발해져 수요가 급증하자 3개소의 가마가 있었으나 최근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십여 년 전에 완전 폐요되었다.

죽암리 석령(石嶺)

죽암리 석령

본래 박진사의 터로 박진사는 큰 부자였으나 동학란 때 생계가 어려워지자 그 터를 광산김씨에게 팔고 이촌했는데 그 후손의 종적을 알 길이 없다. 1790년경 양성이씨 중영(重英), 시광(始光) 부자가 죽사동에서 이주해 왔고 강릉유씨 일성(日成)이 입촌하였으며 뒤이어 광산김씨, 파평윤씨 등이 입촌하였다. 이 마을은 발봉산 기슭에 있어 담골로 통하는 석현과 죽사동으로 통하는 석령재 밑에 있어 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석령(石令)이라 하였다.

죽암리 소명(小明)

해창이 생긴 후에 형성된 마을로 1789년 호구 총수 지명 우천(牛川)이 이 마을인 듯하다. 조씨(趙氏)가 먼저 입촌했다고 전하는데 확실한 자료는 밝힐 수 없고 김해김씨 김석덕(金錫德)이 1800년경에, 광산김씨 문정공파 김수련(金壽 )이 1900년경에 뒤따라 입촌하였다. 이 마을은 소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풍수설에 의하면 뒷산 봉우리가 범 머리 형국이고 마을은 소가 풀을 뜯는 형국이며, 옆 산은 개 형국, 동교 뒷산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 마을 건너 학천은 학 형국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동3면에서 해창으로 가는 길목인 이곳의 소맬등 쇠맬등 쇠멩동 소명동으로 변화했으며 조금 더 가면 소 짐짤등과 관련이 있어 소짐짤등 소지메등 소시메등 소심 등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페이지 만족도 조사
최종수정일
2017-09-08 10:08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