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리

죽장리 장동(墻洞)

죽장리 장동

양성이씨 이암손(李岩孫)이 1460년경 죽사에 입촌하였으나 그 자손이 곧바로 옮겨 산 듯하며 1705년에는 광산김씨 김구일(金九一)이 모친과 함께 입촌하였고 1760년경에는 파평윤씨, 공주이씨, 함평이씨 등이, 1800년경에는 김해김씨, 평강채씨, 광주정씨 등이 입촌하여 살았다. 1960년 무렵의 전성기에는 130여 호로 손불면에서 제일 큰 마을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60여 호 되는 마을이다. 죽장리 1구를 등촌, 잿몰, 양지, 골몰로 나눌 수 있으나 통상 "담골(墻洞)"로 총칭한다. 담골은 발봉산과 계동산, 호두산, 우마산 등이 담장처럼 에워싸고 있어 담골이라 부른 듯하다. 1789년 호구총수 지명을 보면 장동(墻洞), 장동양지(陽地), 장동등촌(登村)으로 표기하였다.

죽장리 수철(水哲)

죽장리 수철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풍천임씨 임상문(任相文)이 입촌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800년경에 전주이씨, 압해정씨, 광산정씨 등이 입촌하여 살고 있다. 손불면 자연마을 중 해발상 제일 높은 마을으로 남수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수철동(水哲洞)"이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있으나 고증할 자료는 없다. 이웃 죽사와 관련된 듯한 이름모를 절터에 탑이 있었던 듯 마을 맞은편 고랑 탑골에서 기왓장과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풍수설에 전해오는 서출동유수의 근원지이다.

죽장리 응암(鷹岩)

이 마을은 동암리에 입향했던 고부이씨의 후손 이세영(李世煐)이 1670년경에 이주하였고 1700년대에 역시 동암리로부터 천안전씨, 광산정씨가 입촌하였으며 1800년경에 압해정씨, 함평이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동암리에 입촌했던 이세영(李世煐)이 1670년경에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 이름을 "당뫼(堂山)"라 부르다가 뒷산 매봉(鷹峯)으로 인하여 "응암(鷹岩)"이라 부르게 된 듯하다.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는 없는 마을이며 1914년 행정 개편 이전 지명은 응암( 岩)으로 표기되어 있다.

죽장리 죽사(竹寺)

죽장리 죽사

죽장리에서 맨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고 전하나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 나오지 않는 마을이다. 양성이씨가 최초로 입촌하였고 한양조씨, 인동장씨, 공주이씨 등이 뒤이어 입촌하여 살고 있다. 옛날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사라고 하던 절이 있었는데 마을 이름도 이 절의 이름을 따서 "죽사(竹寺)"라고 한 듯하다. 마을 위쪽으로 으슥진 모퉁이를 지나면 버든(버드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마을 터가 있고 그 위에 저수지 죽장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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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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