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리

월천리 영월(迎月)

삼양사 손불 농장 간척공사가 완공되어 농토가 조성됨으로써 1935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당초에는 강씨, 장씨, 조씨, 임씨, 서씨, 김씨의 각 성이 입주하였으나 조씨, 강씨는 이촌(移村)하였고 기타 성씨는 현존하고 있는바 동령에 월출광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영월(迎月)"이라 명명하였으며 지형이 군유산하에 낙산으로 뻗어 있는 칡꽃 형국이다.

월천리 농장(農場)

월천리 농장

1933년 손불 간척공사가 삼양사에 의해 완공되어 농토가 조성됨으로 인하여 1936년부터 농경인 입주에 따라 당초 7~8호의 각 성이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농장사무소와 창고 3동을 건축하고 '삼양사농장사무소'라고 현판을 걸므로 인하여 마을 이름이 "농장(農場)"이라고 불러지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이곳에 조용선(曺龍善) 장인학(張仁學) 박내옥(朴乃玉)등이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삼양사는 지금 삼양식품 등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번창했다.

월천리 신기(新基)

월천리 신기

이곳 신기 마을은 이웃 안애기의 새터로서, 새 터라 하여 신기(新基 1789년 호구총수지명, 1914년 지명 申巳로 바뀜)라 불렀다 전해오며 문씨보다 100여년 후에 정착한 천안 전시원(全時元)의 후손이 자작일촌하여 살아오고 있다.

월천리 안악(雁岳)

월천리 안악

이 마을은 평산마을과 더불어 기러기와 인연이 있는 듯 마을이름도 "雁來基(안래기 안애기)" 또는 "雁落(안락 안악)"이 변형되어 지금은 "安樂(안락 안악)"으로 표기 호칭하는 어촌이다. 1975년 20여 세대의 문화촌이 형성되고 월천 간척지 40여 정보의 농토가 조성되어 경작하고 있다.

월천리 월산(月山)

월천리 월산

옛날 노승봉의 도승이 복호산 밑의 저 마을은 반달 형국이라며 월산(月山)이라 명명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정유재란 후 1600년 경 월야면의 진주정씨 후손 치(??)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월산은 손불에서 영광 염산으로 통하는 지방도의 중심 마을로 1953년 4월 1일 손불서교가 복교되고 상가가 조성되었으며 1964년 정부양곡 보관 창고와 정미소, 교회, 공의진료소 등이 생겨 손불 서지구의 중심지로 제2소재지 구실을 하고 있다.

월천리 비천(飛川)

옛날에는 포구로서 배가 많이 드나들었으며 이곳 사람들은 물론 외지에서도 비천(飛川 1789년 호구총지명, 比川 1914년 행정구역개편 지명) 포구라 불러야 알 정도였다. 마을 앞으로 지금도 개울이 흘러내리고 있어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본래는 김씨의 터인데 이웃에 저수마을이 생긴 후 몇 호만 남아 있다.

월천리 저수(貯水)

월천리 저수

1932년 월천저수지가 생긴 후 광활한 농토를 배경으로 하여 저수지 물을 이용 농사를 짓기 위해서 주민들이 모여 들어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마을 이름도 "저수(貯水)"라 불러 오고 있으며 봄이면 이곳 저수지엔 많은 낚시꾼들이 모여들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월천리 어전(於田)(늘밭)

월천리 어전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고려 때 이 마을에는 배씨가 살았는데 삼별초 난으로 배씨가 역적으로 몰리자 생명을 구하고자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1600년경 나주임씨 후손이 이 마을에 정착하였고 뒤이어 천안전씨가 들어왔다. 땅이 기름지고 논과 밭이 많아서 이곳에서 살면 자손과 생활이 날로 번창해 간다는 뜻에서 "늘밭"이라고 불렀다 한다.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는 얼전( 田)으로 표기되어 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이전부터 어전(於田)으로 표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주위에는 서낭뫼, 괴양지기, 가재밭골, 성젓골, 빕새골, 새삿골, 내락골, 까장물, 장자골 등 우리말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월천리 백옥(白玉)

월천리 백옥

이 마을은 속칭 일공구 주변 마을로 백학(白鶴)이 노는 곳이라 하여 "백학동(白鶴洞)"이라고 부르다가 삼양사의 감독이 방조제의 갑문을 백옥갑문이라 명명한 후 학이 옥으로 변하여 "백옥(白玉)"이라 부른다고 하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에 백옥(白玉)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백옥갑문이란 갑문명은 오랜 이 마을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이 마을은 와우(臥牛)형국인데 갑문이 설치된 곳이 소의 머리요 마을중심부가 소의 몸통이고 뒷등이 소의 꼬리부분이라 하며 뒷고랑이 혼창곡(渾蒼谷)이다.

월천리 신옥(新玉)

이 마을도 속칭 일공구(一工區) 주변 마을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 석산으로서 석산 밑의 재가 수박처럼 생겨 수박등으로 불리어 왔고 월천 저수지 방조시 그 원형을 상실하였으며 수박산 뒤편 월천저수지 둑가에 코처럼 날름한 곳, 전에 배가 닿았던 이곳 선창을 속칭 "코주백이" 또는 "코쟁이" 선창으로 부르다가 최근 주변 지역의 변화에 따라 그 명칭도 신옥(新玉)으로 호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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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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