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리

북성리 차경(且京)

북성리 차경

1583년 경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수만이 정착한 이래 거의 자작일촌을 이루었고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성씨도 몇 가구가 살고 있다. 군유산 동쪽 밑의 옥녀채즐 형국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채경동"이라 부르다가 군유산에서 고려 공민왕이 놀다간 후 "여기가 또한 서울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해서 "차경(且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공민왕의 전설은 무근한 전설이며 고려태조 왕건이 태봉국의 장수일 때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해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에서 군사 조련을 했으며 왕건이 되었기에 서울이 되려다 말았다는 전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북성리 승선(昇仙)

북성리 승선

이웃마을 차경동에 정착한 박씨의 종항간 박선만이 1583년경 입촌한 후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차경동 아랫마을에 옛날 효녀가 있어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뒷산에 올라가 지성(至誠)으로 기도를 올리던 중 그 효심에 감동한 신선이 나타나 약을 가르쳐주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신선동" 또는 "승선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앞 냇가에 다리를 놓고 이름을 "방선교(訪仙橋)"라 하였는데 그것은 이 마을을 방문하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며 내(川) 중간에 막은 둑을 또한 "승선보(昇仙伏)"라 한다.

북성리 사기(沙己)

북성리 사기

1553년에 김해김씨 수검이 강원도 원주에서 이주해왔으며 1583년에는 전주이씨 하손(夏孫)과 한양조씨 맹성이 이주해와 살면서 사기그릇을 구웠다 하며 그 후 1683년에는 진주강씨 주태(柱台)가 이주해 왔으며 이어서 달섬배씨, 밀양박씨 등이 이주해와 살았다. 사기조 마을은 처음에 "사기소(沙器所)"라고 한문표기를 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조 때 분청자기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5년부터 마을 이름을 한자로 "四奇所"표기하는데 그것은 기이한 것이 네 가지 있다는 뜻이다. 그 네 가지란 군유산 무제단, 월명산 7대봉, 장군바위, 미륵암 석불이다. 대략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폐요된 분청자기 도요지는 마을 북쪽의 산록에 있었다. 옛날에는 백제토기 잔편이 많이 뒹굴었다는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백제 때부터 그릇을 구웠다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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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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