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산리

학산리 지호(芝湖)

학산리 지호(芝湖)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임학사 등 8학사가 터를 잡고 살았다 하는데 그중 백학사의 후손이 번성하여 살고 있다. 마을 뒷산인 월암산이 비옥하여 풀이 무성한 곳에 지초가 많고 마을 앞바다가 호수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지호(芝湖)"라 했다고 한다.

학산리 평산(平山)

지호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평사낙안(平砂落雁)이라는 명당 터가 있다고 오래전부터 전해오는데 이 터와 관련지어 "평산"이라는 마을 이름이 탄생된 듯 하다. 1930년경 이곳 마을 앞 바닷가 상류를 막아서 20정보의 간척농지(목포사람 정태성이 막았다 하여 속칭 정태성농장이라 한다)가 조성되었고 9,000평의 평산제 물을 현재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전답을 몽리하고 있다. 학산리라는 명은 복학과 이곳 평산에서 따온 행정상의 이명이다.

학산리 금곡(金谷)

학산리 금곡(金谷)

입촌 년대와 유래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조씨가 입촌하여 2백여 년간을 살다가 모두 떠났다 한다. 그 뒤를 이어 김해김씨 우경(佑慶 1608년생)이 1730년경 영광 군남에서 이주하여 살았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후손들이 이 마을의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이 금곡(今谷)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을에 전해오기는 마을 앞의 산이 칼과 같이 생겼다 하여 "검곡"이라 했으며 조선조 성종(成宗)때 산에 금이 묻혔다 하여 "금곡(金谷)"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한다.

학산리 복학동(伏鶴洞)

학산리 복학동(伏鶴洞)

조선조 영종 때인 1720년 등과하여 전의현감 황주목사를 역임한 김덕희가 풍류객으로 전국을 돌다가 이곳에 이르러 조그마한 암자(불당사라 했다하며 절터가 남아 있다)를 짓고 수양을 하게 되었는데 당산지선에 있는 복학의 형국을 보고 1792년 처일과 처율을 불러 이곳에 살게 하였다 한다. 엎드린 학,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풍수지리설의 "복학"을 마을 이름으로 정했다고 하며 복학동의 학의 알은 현재 마을이 들어선 주택지라고 전해 온다.

학산리 완정(完井)

복학동 재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 완정(完丁) 마을이다. 이 마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완정교가 영광군과 함평군의 군계가 되어 본래 한 마을이 두 갈래로 분동(分洞)되었으며 함평 땅에는 6호가 살고 있어 복학동과 같이 관리하고 있다. 옆 마을이 영광 염산면의 무소슬, 대무슬이며 주민의 일부가 이웃 주민들과 같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 이웃 군과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몇 년 전에 제방이 연결되어 더욱 화합하는 분위기속에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학산리 소동(小洞)

학산리 소동(小洞)

학의 작은 날개 형국이라 하여 "작은 나레"라고 부르다가 "소동(小洞)"으로 표기, 호칭하고 있으며 150년 전에 지호의 수원백씨 후손이 이주 정착한 이후 지금은 水原白氏, 全州李氏, 咸平李氏 등이 살고 있다. 학산리는 학의 형국이라 도처에 학의 전설이 많으며 1970년 이후 해태 양식업이 시작되고 주변에 많은 농지가 조성됨에 따라 외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이 많았으며 주민일부가 해태업에 종사하고 있다.

학산리 세곡(細谷)

이 마을은 "안애기"의 뒷등과 연결된 제방 끝에 50년 전부터 생긴 어촌으로 가는 모래가 많이 쌓이는 곳이라 하여 가는굴에서 변천된 "가는골" 또는 "안사동"이라 부르며 "세곡(細谷)"으로 표기한다. 이전에는 경기동(문화촌)과 같이 관리하였으며 이 마을은 학의 큰 날개 형국이라 하여 장(長)골 또는 진골(긴골)이라 부르는 곳이며 약 45년 전에 전주리씨가 터를 잡아 살다가 1972년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문화촌 또는 경기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나 현재 학산 3구는 소동, 세곡으로 나뉘어 관리하고 있다.

학산리 해은동(海隱洞)

학산리 해은동(海隱洞)

200여 년 전에 달성배씨가 입촌 했다고 전해오며 지금도 달성배씨가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성씨도 함께 살고 있다. 1970년 이후 바닷가 주위 133㏊에 2,500여책의 해태양식장을 인가받아 해태로 주민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1980년 이후 3개소에 해태 가공 공장이 건축되었고 주위의 모래사장을 이용하여 해수욕장을 개장한 바 있다. 함평만(학산만)의 돌출부분, 해제면 도리포와 마주하는 곳으로 소아구(牛口)가 숨어있는 형국이라 하여 해은동이라 불렀다 한다.

학산리 금계(金溪)

학산리 금계(金溪)

본래 학산리 2구였으나 1985년 3월 1일부로 학산 4리에 편입되었다.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김해김씨, 경주김씨 등이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금개(金開)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이곳 뒷산에서 금이 나왔다는 얘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 최근에는 마을 명을 금계(金溪)로 표기해 오고 있어 물이 맑고 경치가 좋아 이곳 사람들이 인심이 좋은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곳에 지재갑씨가 경영하는 함평군에서 규모가 제일 큰 양만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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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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