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리

가덕리 가리(加里)

고려 때부터 조선조 때까지는 역참제에 의한 역이었다. 약 450여 년 전부터 100여 년간 가로사(加露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의 후문에 높이 2m, 넓이 1.5m의 돌을 세웠다고 하며 그 돌이 일명 동장군비로 불리었고 지금은 선돌벽이라 부른다. 이 선돌벽에는 비문이 있었으나 풍상에 씻기어 알 수 없고, 가로사가 폐찰된 후 한양조씨들이 절터 부근에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이곳에 마을은 없다. 이어서 밀양박씨와 제주양씨가 이 마을에서 살았으며 뒤에 풍천임씨가 입향했다 한다.

가덕리 매산(梅山)

300여 년 전에 가리마을에서 살던 한양조씨들과 무안에서 이주해온 김해김씨가 입향 정착하였다 하며 구한말에는 이 마을이름을 "오산동(烏山洞)"이라 칭하였고, 일제 중엽에 이르러서는 신광면과 대동면 경계에 매산제가 있다 하여 "매산(梅山)"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가덕리 호덕(虎德)

마을형성의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약 300여 년 전에 가리에서 살던 한양조씨가 입촌하여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 마을 뒷산에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형상이 범과 같이 생겼다 하여 "호덕(虎德)"이라 하였다하는 설과 옛날에 이 마을에서 호랑이 덫을 놓았다 하여 "범덕굴"이라 하였다 하는 설이 있으나 지금은 호덕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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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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