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암리

월암리 연천(燕川)

마을 안골이 제비 형국이라 해서 마을이름을 제비내 즉 "연천( 川)"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큰 인물이 날 터라고 전부터 전해져 많은 성씨들이 들고 났다. 맨 처음 이 마을에 입촌한 성씨는 함평모씨로 수남(秀南 1551년생)이며 임진란 이전에는 고성정씨 개청이 터를 잡으려 했으나 엄다면 제동에 눌러 살았고 400여 년 전에 경주이씨가 입촌하여 지금은 거의 자작일촌을 형성하고 있다. 1610년경에는 광선김씨 유(瑜)가 입촌했다가 백운리 저동으로 이사했다. 마을 입구에 55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고 이 느티나무(당산나무)에 매년 당산제를 지낸다.

월암리 가야(加也)

군청으로부터 서북방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23호선 좌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 마을은 면 소재지로서 각급 기관인 면사무소, 중학교, 국민학교, 단위조합, 우체국 등이 있으며 선조 때 장이길의 후손들이 사천장(사납장)을 개시하였다 한다. "가야(加也)" 마을이라는 명칭은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나오는데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지금도 가야 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은 외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사납장"이란 이름이 더 친근하다. 이 마을은 국도선 좌우로 상가가 조성되어 있어 면민 전체에게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 주는 마을이다.

월암리 신촌(新村)

대동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마을로 본면에서 제일 산중이고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신천(新川)으로 표기된 마을이며 마을 어귀에 선돌이 2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정월이면 이 선돌에 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탁(卓)씨가 제일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나 그 후손은 현재 살고 있지 않고 연천에서 분가한 경주이씨들이 주종을 이룬다.

월암리 월성(月城)

계월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로 국도 23호선을 끼고 있으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나오는 것을 보면 오래된 마을이나 전에 살던 성씨의 유래는 알 수 없고 90여 년 전에 청송심씨가 들어왔으며 지금은 김해김씨, 경주이씨, 평산신씨들이 살고 있다. "월매(月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 대동 저수지 승상공사로 인하여 인근에 있는 농경지 및 가옥이 침수되어 이주해야 할 형편이다.

월암리 매월촌(梅月村)

평강채씨가 터를 잡아 정착한 마을로 일제시대에만 해도 30호가 넘게 살았으나 대동저수지 축조공사로 인하여 대동면 매월촌과 신광면 매월촌으로 분리되었다 한다. 그 당시 대동저수지 공사 때문에 많은 집들이 수몰되어 이주하였고 지금은 10호만이 거주하는데 저수지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을 이어가는 때도 있다. 저수지 공사 당시에는 많은 농경지가 있었으나 현재는 논은 전체가 침수되어 밭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을유래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매월촌(梅月村)"이라 한 것을 보면 매화꽃이 많이 피는 곳이었을 거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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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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