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흥리

복흥리 복치(伏峙)

마을이 매에 놀란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해서 원래는 "복치(伏雉)"라고 했으며 지금은 "복치(伏峙)"로 표기한다고 하는데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복령(福令)으로 표기되어 있다. 1600년경에 청송김씨가 이주해와 지금은 청송심씨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으며 본면에서 가장 많은 청송심씨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는 수령 300여년으로 추정되는 당산나무가 있다.

복흥리 유덕(有德)

마을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형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복치마을의 청송심씨들이 이주하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다 하여 "유덕목(柳德木 1789년 호구총수 지명)"으로 표기했는데 오늘날에는 "유덕(有德)"으로 쓰고 있다.

복흥리 괴치(槐峙)

감사를 지낸 임챙경 공의 묘를 유덕마을에 모셨는데 여러 사람이 묘지를 보고 삼정평(석계 서남쪽에 있는 들)이 낮으니 괴목을 많이 심어야 묘지가 좋다 하여 괴목 수 십주를 심어 300년 후에 그 괴목을 제각을 짓는데 사용하였으며, 그 괴목이 있었다 하여 마을명을 "괴치"라 하였다 하며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는 박치(朴峙)로 표기됨. 복치와 유덕에서 이사해 온 나주임씨와 청송심씨가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복흥리 석계(石溪)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는데 이 냇가에는 돌이 많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석계"라고 하였다 하며 장씨가 처음으로 입촌하여 살았으나 지금은 장씨는 없고 심씨와 김씨가 주축을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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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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