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리

삼덕리 덕산(德山)

이 마을은 함평이씨 덕봉(德鳳 1575년 무과급제)이 개촌하였고 이어 파평윤씨 상오(商五 1668년생)가 해보면에서 이거 정착하였고 지금은 파평윤씨, 함평이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 지금은 폐촌이 된 마을 앞의 초내동(草乃洞) 지명은 나오고 덕산이 없는 것을 보면 초내동에 합해졌던 것 같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부터 덕산(德山)으로 바꾼듯 하다. 현재 군내에서는 덕산이란 마을 이름보다 새낙골(새날골 즉 조비동 鳥飛洞)으로 더 알려져 있다. 마을 형국이 새가 날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덕리 덕암(德岩)

덕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200년 전에 진도에서 이주해온 김해김씨들이 터를 닦았다 하는데 그 후손은 지금은 살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덕암(德岩)이라 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주위에 산과 바위가 많음을 미루어 보아 덕암이라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이 높은 산들로 에워싸여 있어 항상 조용하고 맑은 공기가 풍부해 장수를 하는 마을로 소문이 나 있다.

삼덕리 덕천(德川)

이 마을에는 400여 년 전에 고씨가 터를 잡았다고 하나 그 후손은 지금 살고 있지 않으며 고씨에 이어 함평모씨 유추(有秋 1615년생)가 신광면 월암리 연천에서 이거하여 이룬 마을로 모씨 자작일촌이다. 마을에 얼음을 저장한 빙고(氷庫)가 있었다고 전하며 마을 앞의 다리가 지도에도 빙고교로 기재되어 있으나 어디에 빙고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그 뒤를 이어 5개 성씨가 입주해 거주하나 모씨가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덕리 좌야(左也)

이 마을을 개촌한 성씨가 한(韓)씨라 전하나 그 후손은 지금 1호도 살고 있지 않다. 그 후 함평모씨 일성(一成 1678년생)이 월암리 연천에서 이거 정착했고 입촌자 일성(一成)은 1705년(숙종 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진해 언양(彦陽) 현감을 역임했다. 모씨에 이어 함평이씨 그리고 김해김씨가 80여년전에 입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좌야(左也)라는 지명은 마을모양이 "也"자를 왼편으로 돌려 놓은 모양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덕리 원골(元骨)

좌야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 때 유현원(柚峴院)이 있었다 하여 원골이라고 한다. 원리가 폐쇄된 후 마을도 폐촌 되었다가 50여 년 전에 청송심씨 기연등이 입촌,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작은 자연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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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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