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리

원산리 원남(元南)

이 마을은 문화유씨가 개촌했다고 하는데 그 후손이 한 집도 살고 있지 않아 정확한 입촌 연대를 알 수 없으며 마을 뒷편에 유정승 묘라고 전해오는 고분이 있으나 옛 기록에 함평출신이라는 유정승이 없어 전설을 확인할 수도 없다. 유씨에 뒤이어 입촌한 성씨는 고성이씨로 이우송(李友松 1738년생)이 문화유씨 극명(克明)의 사위가 되어 아버지인 덕보(德輔)와 함께 1760년경 무안 대호도(大虎洞 현 함평군 엄다면 성천리 와촌)에서 이거 정착했으며 150여 년 전에 광산김씨 구현(龜鉉)이 들어와 살았다. 으뜸이 되는 마을이라서 원남(元南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을 뿐 정확한 지명의 유래가 전하지 않고 있다.

원산리 지초(芝草)

원래 화산(花山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지명)이라 했는데 지초라는 한약재가 많이 자란다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후 지초(芝草)로 바꾸었으며 원남에서 고성이씨가 분가했고 신광장(사납장)의 질서유지에 공이 컸던 장호랑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고성이씨가 제일 많이 살고 있다.

원산리 학동(鶴洞)

이 마을은 함양박씨 이완(履完 1705년생)이 1740년경 월야면 용암리 은암에서 이거 개촌하였고 그 후손이 신광면 가덕리로 옮겨갔다. 이완의 현손 윤상의 처 연일정씨의 효열이 탁월했고 그의 아들 찬문의 효행이 이름 높았다. 원래 이 마을은 덕동과 한 마을 이었던 듯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는 나오지 않는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부터 덕동에서 분리하여 학동으로 불렀고 학동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에 있는 산이 학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산리 덕동(德洞=갓점:笠店)

학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 때 이 마을에서 갓(笠)을 만들었기 때문에 "갓점"이라고 했다. 마을 어귀 인학동에 6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있다. 1960년대에 마을 이름을 덕동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이 마을에는 윤씨와 이씨, 백씨가 살았으며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멸족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김해김씨 창성(昌成 생졸연대미상, 아들 순일(純鎰-1780년생)이 1780년에 이주 정착 하였고 한때는 114호가 살았다고 하나 1980년 심남일 의병장이 기병한 곳이라 하여 일본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 현재 이 마을은 김해김씨가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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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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