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리

동정리 냉천(冷泉)

마을에 노거수 당산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의령여씨가 거주하면서 동산(1789년 호구 총수 지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지명에도 동산(東山)으로 표기됨)마을이라 칭하였으나 380년을 전후해 청송심씨가 입향하고 근세에 동산마을을 정정하여 냉천(冷泉)이라 하였다 한다. 청송심씨 일가가 시원한 물을 찾아 휴양지로 택한 것이 마을을 형성한 배경이며 어느 곳을 파도 시원한 지하수가 나오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냉천"이라 하였다 한다.

동정리 삼양동(三陽洞)

이 마을은 원리 키(치) 명당이라 칭하였는데 키명당이라는 명칭은 노구봉이란 산의 위치가 키의 끝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그 후 이 지역을 노들이 강변, 키명당, 개무리라는 세 마을을 합쳐 부르는 이름인 "삼양동"이라 하였다. 45년 전에 창령조씨가 터를 잡은 마을이다.

동정리 수정동(水井洞)

물이 맑다 하여 마을 이름을 수정동(水井洞)이라 했다 한다. 이 이름은 500여 년 전에 제주양씨가 들어와 성촌했다고 전하나 그 자손은 살고 있지 않다. 그 후 400여 년 전에 광산노씨 기벽(起壁)과 1750년경 김해김씨 윤재(允載)와 원재(元載 1722년생) 송계에서 이곳에 이주한 이래 그 자손이 번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정리 신여(申呂)

마을의 뒷산에 학명당이 있다 하여 알려진 곳이고, 강변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신씨와 여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신여(申呂)"라고 전하나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는 신여(新余)로 되어있다. 근세에 마을 동편에 동정제가 축조되어 심한 가뭄에도 농사에 불편이 없으며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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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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