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림리

덕림리 백양(白羊)

이 마을은 2기의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개촌 연대는 선사시대로 볼 수 있는데 현세에는 경주이씨 마을이며, 경주이씨 이전에는 배씨(裴氏)가 살았다고 전할 뿐 확실한 연대는 모른다. 경주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약 250년 전인 1687년(숙종13년) 문과에 급제하여 7읍을 다스렸고 청백리(淸白吏)로 뽑혔던 이회원(李會元)의 후손인 언상(彦詳), 언심(彦諶)이 거주하면서부터이다. 김해김씨 족보를 참조하면 김광립(金光立)의 후손의 세거지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이 "백양동(白羊洞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불리는 것은 "백양골"에서 온 말인 듯하며 배 형국과 인연이 있음이 아닌가 한다. 주위에는 선치, 닻머리, 선밑으로 불리는 곳이 있고 치는 키의 방언인 듯하다. 또한 배 형국이란 뜻으로 부른 "배형골"이 변하여 "배양골"로 불리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며 이곳은 고막천에서 나산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그마한 선박이 정박한 곳으로 추측된다. 한국인의 족보에 보면 함남북청의 백양사(白羊祠)가 경주이씨 회원을 모시는 사우라고 되어 있는데 白羊은 회원과 관계되는 지명인 것도 같다.

덕림리 죽림(竹林)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에 함평노씨가 살다가 모두 이거하고 현재는 경주김씨 진주정씨 등이 살고 있다. 진주정씨는 4대까지 살았으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만양 정덕휴(鄭德休)를 기념한 정각이 건립되어 있다. 경주김씨 백촌 김문기(金文起)를 기념한 충의사가 건립되었는데 김태원 장군의 위폐가 봉안되어 있다. 대동면 상옥리 옥동과 면계를 이루며 고막천을 사이에 두고 나주군 문평면 갈마지와 마주보며 군계를 이루고 있다. 한때 대나무가 무성하여서 마을 경치 또한 수려하여 마을 이름을 "죽림(竹林)"이라 했다고 한다.

덕림리 귀암(龜岩)

구산리 구산마을과 같은 시기에 형성된 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인근에 있는 덕림리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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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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