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선리

원선리 유촌(柳村)

이 마을 앞에 고인돌이 수십기가 있고 마을 안길이나 농토에 백제 토기장편이 수없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석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헌으로는 김해김씨 경파의 낙남조인 김맹리는 세종 때 인물인데 이곳에 낙향하여 속세를 멀리하고 산수를 사랑하며 살았으므로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500여 년 전이라 말할 수 있다. 명당이라는 앵소산이 마을을 안고 있고 천주봉에서 흘러내린 원선천이 마을 앞을 지나 구산천에 이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 마을이 명당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에 아름드리 버드나무 5그루가 있었던 곳이라서 마을 이름을 "유촌(柳村)"이라고 했다하나 지금은 고목이 된 지 오래다. 유촌이란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개편이전부터 보인다.

원선리 원선(元仙)

이 마을이 형성된 시기와 연대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는 알 수가 없으나 약 400여 년 전의 터로 본다. 함평이씨와 김해김씨가 주류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원선리는 나산면의 다른 마을에 비해 면적은 넓으나 산이 많은 오지이다. 천주봉이 주봉을 이루고 남쪽으로 구산리 북쪽으로 월봉리와 인접하고 있다. 마을 뒤에 철마산이라는 명산이 있고 쌍령재라는 두개의 재가 있으며 조선시대에 국도가 지나던 곳이다. 고을 원님이 쌍령재에 이르러서는 잠시 쉬어가게 되면서부터 가장 신선한 지역이라 칭했던 까닭에 "원선(元仙)"이란 마을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원선리 월랑(月郞)

인동장씨가 지금부터 350여 년 전에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일제를 전후하여 진주정씨가 주축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오손도손 모여 살고 있었다. 천주봉에서 뻗어내린 서당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월봉제에서 흐르는 월봉천의 맑은 물이 마을을 끼고 돌아 월봉평야를 거쳐 고막천에 이르고 있어 마을의 터가 과히 으뜸이다. 마을의 뒷산의 형국이 황새의 형국이라서 "관동( 洞)"이라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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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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