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리

수상리 유덕(有德)

1550년 경 조선 명종(明宗)때 함양박씨(咸陽朴氏) 흠종(欽琮)이 광주에서 이거하여 터를 잡았으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데 모두 백년 전후에 입주하였다. 주민들이 선량하고 마을에 덕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유덕(有德)이라 했다고 전한다. 1789년 호구총수지명은 유덕산(有德山)으로 되어 있다.

수상리 성재동(成才洞)

약 400여 년 전 진주강씨(晋州姜氏)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고 하나 구전일 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 후 나주정씨(羅州鄭氏)가 들어와 10대를 살았으나 지금은 겨우 한 집이 살고 있고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이곳에 옮겨온 지 백년 미만이다. 마을 뒤의 사실재(沙實峙)는 항일의병과 왜 헌병이 접전한 전적지이며 재주를 이룰 수 있는 마을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성재동(成才洞 1789년 호구총수지명, 聖才洞)이라 했다고 한다.

수상리 대안촌(大安村)

이 마을에 누가 먼저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다섯 가지의 이씨(李氏), 전주이씨(全州李氏), 함평이씨(咸平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전의의씨(全義李氏), 고성이씨(固城李氏)가 살았으며 항일의병장 김태원이 나주 문평 갈마지에서 이거하여 살았던 마을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마을은 한말 의병의 격전지가 되었다. 박영근(朴永根), 오성술(吳成述), 이기손(李起巽) 등의 전투사를 보면 유덕산(有德山)과 대안촌(大安村)을 수 없이 드나들며 싸운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것은 전술상 지세가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대안촌(大安村)은 대한촌(大寒村)이 더 적격일 것으로 느껴지는 마을이다. 동구에 들어서면 둘레 4m, 높이 20m의 느티나무가 영락정을 우산처럼 덮고 있고 연자방아가 있다. 온 종일 햇볕이 들지 않는 정자 밑에는 삼복(三伏)을 모르고 지낼 만큼 시원하기 때문에 "대한촌(大寒村)"이 더 적격일 것이나 부르기 쉽도록 하기 위해 "대안촌(大安村)"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수상리 월현(月峴)

선산김씨(善山金氏)가 배문이(용두리 선박)에서, 죽산안씨(竹山安氏)가 광주에서, 여양진씨(麗陽陳氏)가 나주 도야(현 광주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거의 같은 시기인 200여 년 전에 들어와 정착했다고 하며, 그 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1870년경에 삼도면 삼거리에서 김 노조가, 나주정씨(羅州鄭氏)는 유덕에서 옮겨 왔는데 지금은 안씨촌이라 할 만큼 안씨 일가가 자작일촌하고 있다. 이 마을은 나산면 소재지에서 삼도선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덕산과는 고개 하나 사이인데 유덕산보다는 250년 정도 늦게 생긴 마을이다. 개기(開基) 당시에는 "샛터"라고 부르다가 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 앞산이 토끼봉이고 뒷산이 반달모양 같다고 하여 옥토망월(玉兎望月)이란 뜻에서 월현(月玄, 月峴)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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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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