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리

장년리 장고산(長古山)

장년리 장고산

이 마을은 원래 영풍면(永豊)에 속했고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長古山里"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을 앞에 있는 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선녀의 장고(長鼓)같다 하여 장고산이라 불렀는데 악기인 장고가 長古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백제 때 굴내포가 서남의 교통요로였을 때 하느리(한나루 大津)로 바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어떤 성씨가 살았는가는 알 수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성씨로는 경주이씨 석영(錫榮)이 1800년경에 입촌 했으며 광산김씨 장현이 1900년에 이주 정착했다.

장년리 월선(月仙)

장년리 월선

지금부터 200여년이 못되는 때에 백년동의 금녕김씨가 이주해 와서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월선(月仙)마을은 둥그런 산의 형태가 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라 전해오고 있다.

장년리 구주포(酒浦)

장년리 구주포

지금의 주포(酒浦)가 개항되기 전까지 포구였다고 해서 구주포라고 한다. 지금의 구주포는 함평에서 가장 오래된 포구였다. 여지승람에 굴내포(屈乃浦)는 함평현 서쪽 15리에 있다고 했고 1800년대에 간행된 군지에는 산내포(山乃浦)가 함평현 서쪽 15리에 있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지금의 구주포가 옛날에는 굴내포였다가 뒤에 산내포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구주포로 불리우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옛날 바다는 일제 때 전북 출신 나용균(전 국회부의장)에 의해 간척답으로 변했다. 포구가 그 기능을 잃게 되자 지역주민의 이동이 크게 일어났다. 포구가 대개 토박이 보다는 이주민의 정착이 많은 것이긴 하지만 구주포의 주민의 이동은 현재 토박이는 한 집도 살지 않고 현재 거주주민은 모두 백여 년 미만의 정착사를 보이고 있다. 현재 9호가 살고 있는 광산김씨는 희문이 60년 전에 나주 문평에서 이주 정착한 가문이며 밀양박씨 상구는 80년 전에 이사 왔고 4호가 살고 있는 현풍곽씨(郭氏)는 60년 전에 이주하였다. 백제 때는 서남의 교통요로를 이루었고 근세에도 황실이, 엽삭 등 해산물 집산지였던 굴내포(구주포), 지금은 들가의 한촌(寒村)으로 바뀌고 말았다.

장년리 백연(白蓮)

장년리 백연

마을 앞에 하얀 연꽃이 많이 있다 하여 원래 흰 백(白)자와 연꽃 연(蓮)자를 써서 "백련(白蓮)"이라 했다고 하나 1789년의 호구총수 지명에 백년동(百年洞)이라 표기된 것을 보면 전하는 바와는 다른 것 같다. 250년 전에 금녕김씨 기인(琪仁)이 최초로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였고 그의 후손이 월선 마을에도 옮겨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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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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