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리

옥산리 흥룡(興龍)

옥산리 흥룡

마을 형국이 용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모양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흥룡(興龍)"이라 했다고 하나 용촌의 원명(原名)인 용촌( 村)과 관련지어 방앗간이 흥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인 듯싶다. 이 마을에는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낸 박응주(朴 柱)가 1581년(선조14년)에 아들 대봉(大鳳), 대린(大麟) 형제를 데리고 이주 정착하였고 현재도 그 후손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봉의 7대손 우성이가 식목한 소나무 2그루가 현재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둘레는 5m가 넘는다.

옥산리 가작(佳作)

옥산리 가작

이 마을은 흥룡에 입촌한 박응주(朴 柱)의 6대손이 마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부친 박천응(朴天 )이 돌아가시자 효성이 지극한 2남 박영원(朴永源)은 장례 후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侍墓)를 하며 살았기에 "天性至孝親"이라 하여 마을 입구에 효자각을 세우고 현재까지 보호하고 있다.

옥산리 옥산동(玉山洞)

옥산리 옥산동

옛날에는 마을 앞에 연방죽이 있어서 "방죽안"이라 불렀으며 동쪽 300m 지점에 옥녀봉(玉女峯)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옥산동(玉山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김해김씨 문경공파 파조(派祖)의 9대손인 대기(大器)가 중종 29년(1534년)에 입촌 정착하였고 현재 그 후손은 12호로 마을에서 제일 많은 씨족이다. 이어 김해김씨가 입촌 하여 현재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마을 앞 정자 옆에 조선버드나무라는 500여년 된 고목 3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의 수령과 초초의 입촌 년대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옥산리 용촌(龍村)

옥산리 용촌

마을 형국이 방앗간 같다 하여 방아 '용( )'자를 써서 "용촌( 村)"이라 했는데 후에(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의함) 용계(龍溪)라 하였고 1910년 지적 정리 때 "용촌(龍村)"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아의 확은 확골들이라 하여 6정보 정도가 있다. 이 마을은 380여 년 전에 김해김씨가 정착함으로써 이루어졌고 현재는 그 후손의 6호가 살고 있으며 밀양박씨가 제일 많이 살고 있다.

옥산리 모산(帽山)

옥산리 모산

1789년 호구총수의 지명에 보면 모읍(毛邑)으로 되어 있는데 이 마을 형국이 사모(紗帽)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모산(帽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총 가구 18호 중 밀양박씨 9호, 남평문씨 3호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남평문씨의 입향조는 상주(尙周 1676~1740)로 1700년에 입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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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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