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리

성남리 소등(小等)

성남리 소등

옛날에는 "소등라(小藤蘿)"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소등(小等)"이라 했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이전에 임진란의 선무원종 1등공신인 천안전씨 계신( 信)이 입주 정착하였고 인조 때인 1600년경에 금성나씨 무회가 입주하여 현재 후손이 11대에 이르고 있으며 무회의 아들 사형제가 있었는데 장남 위치(緯樞)가 숙종 때 판관을 하였고, 둘째아들 위순(緯絢)은 훈련주부를 지냈다 한다. 현재도 이 마을에 그의 후손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나 무회는 1625년 현 대동면 향교리에 함평향교를 세울 때 영건별감의 직책을 가졌었다. 소등(小等) 마을과 함께 성남리에는 장지(獐地) 마을이 있었는데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 분할로 인하여 엄다면 신계리에 포함되었다.

성남리 성북(城北)

성남리 성북

이 마을은 함평이씨 시조산이 인근에 있고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는지도 300여년이 되어 함평이씨의 본향이라 할 수 있으며 성북(城北)이라는 이름 보다는 "깟대"로 널리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성북의 우리말 이름이다. 성북이라는 이름은 영풍향(永豊鄕 어떤 경우에 의해 언제 향이 되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향, 소 부곡 설치가 신라 때부터인 점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것이 아닌가 여겨짐)의 경계였을 것으로 믿어지는 토석성 성터가 비아동 남쪽 무안의 보평산 능선에 남아있는데 이 성에서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소등에는 창터(창고터) 원성남(元堂)아래에 사장터(활터) 현 성남국민학교 옆에 사장터라는 지명이 전해오고 있으며 이는 영풍향 설치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볼 수 있다. 이 마을은 현재도 함평이씨의 자작일촌이라 볼 수 있으며 함평모씨는 대진이 1900년경 장흥에서 이주 정착했다.

성남리 지성(支城)

이 마을은 함평이씨 시조산을 끼고 있는 마을로 원래 기성(箕城)이라 했다고 하는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箕城이란 마을 이름이 없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에 箕城이 나오고 있고 현재는 지성(支城)으로 표기하고 있다. 원래 箕城이라 부르던 마을이 중간에 폐촌 되었다가 다시 개촌된 것으로 믿어지며 이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거의 근세에 이주한 것을 보고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함평이씨와 하동정씨 창녕조씨가 살고 있고 10가구다. 箕城이란 이름은 고려조 때 함풍현의 별호인데 영풍향에 箕城마을이 있음은 함평이씨 5대조 광봉이 箕城君 군봉을 받았고 함평이씨의 본향인 점에서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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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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