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교리

내교리 서부 동부(西部 東部)

옛부터 불리어 오는 마을 이름인데 서부(西部)라는 이름은 동부(東部)의 반대편에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서부와 서로 상반되는 동부 마을은 현 기각리(箕閣里) 신기산인 함평교육청 근방의 마을으로 1914년 행정구역 정리 때 그 이름이 없어진 마을이다. 흔히들 서부를 "내바람"이라고 부르는데, 내바람이란 말은 우리 지역 사람들이 마중이나 전송을 하기 위해 나들이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서부는 옛날 동헌으로 통하는 한(큰)길이었고 외지로 나가고 들어오는 교차점이었기에 동헌에 귀한 손님이 오면 여기까지 마중을 나가 맞아들이고 갈 때에도 이곳에서 전송을 했기에 내바람이란 지명이 생겼을 것으로 본다. 행정구역명인 서부보다는 새정개(새정제)로 통용되는 마을이다. 현재는 함평읍 상권을 기각리와 함께 잡고 있다. 영수로 중 서부 네거리에서 농고쪽길은 1986년에 확장하여 포장했다.

내교리 내대화(內大化)

내교리 내대화

이 마을에는 처음에 장(張)씨들이 들어와 살았고 1600년대 초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수원 부사를 역임한 경주이씨 결(潔)이 해보면 대각리 회화정에서 이주 정착했는데 현재 함평국민학교 교정 자리라고 한다. 경주이씨에 이어 진주강씨들이 외대화에서 이주 정착했다. 경주이씨들은 1690년경 함평읍 장교리 칠언으로 이주했고 장씨들은 그 후손이 해방 전까지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내대라는 이름보다 구렁물로 통해오는 마을이다. "구렁물"은 구렁에 있는 마을(옛 몰), 즉 구렁물이 변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교리 광교(廣橋)

광교(廣橋)라는 마을 이름은 우리말의 넓다리를 한문으로 표기한 이름이다. 이 마을을 넓다리, 넙태라고 부른 것은 현 삼애원 정문 곁에 있는 시내(川)에 넓고 긴 돌다리가 놓여 있어 이 다리를 넓다리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이 돌다리는 수원부사를 지낸 이 결(경주이씨)이 내대마을에 이주 정착해 살면서 나주에서 가져와 놓았다고 한다. 이 결의 정착연대가 1600년대 초이니 넓다리라는 이름도 그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넓다리라 부르던 돌다리는 현재 함평 군민복지회관 정원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 마을에 대구서씨들이 이주 정착한 것은 대략 1600년대 초로 보고 있다. 기축옥사때 사간원 헌납관의 벼슬을 버리고 기산에 정착한 서세방(徐世芳)의 자손이 분가하여 이주한 것이다.

내교리 외대화(外大化)

내교리 외대화

함평군에서 마을 터가 좋기로 첫째간다 하여 1대화(一大化) 2모형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 마을에 함평향교가 있었기에 군내에서는 대화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마을의 형국이 큰 새우 형국이므로 새우는 물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옛부터 마을 어귀에 못을 팠다. 해방후 마을 광장을 넓히기 위해 이 못을 메웠는데 이상하게도 못을 메운 그 해부터 마을이 기울기 시작하여 집이 뜯겨 팔려 나가는 등 폐촌으로 치달았다. 마을 회의에서 새우가 물이 없어 살지 못하는 격(格)이라며 옛 못을 다시 파냈다. 그 후 다시 마을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래서 대화가 아닌 대하(大鰕가 마을의 원래 이름이라고들 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600여 년 전 모(牟)씨가 들어와 살았고 1417년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사간이 된 모순(牟恂)과 그의 아들 익천(좌찬성)을 배출함으로써 유명해졌다. 후에 진주강씨, 함평노씨가 들어와 살았다. 지금은 이들 성씨 외에 여러 성씨가 들어와 살고 있다.

내교리 신기(新基)

이 마을은 현재 함평중, 함평골프고, 한전 함평지사가 위치하는 마을로 새터라 부른다. 정유재란 때 왜적이 침입하여 현재 임씨들의 선산 자리에 있던 함평향교에 불을 지르고 이 마을도 초토화시켰다. 그 후 마을이 새로 형성되어 산직리(山直里, 임씨들의 선산관계에서 온 이름인 것 같다. 1789년 지명)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申基"로 표기하였고 지금은 "새터(新基)"라고 부른다. 향교 앞의 하마비(下馬碑)는 지금 창고가 세워진 네거리 갈림길에 세워졌었다. 정유재란 후 함평향교는 초가로 초라하게 복구되었다가 1625년 대동면 향교리로 옮겨졌고 향교 주위에 심어졌던 느티나무와 팽나무들도 향교숲쟁이로 이식되어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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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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