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리

광암리 운암(雲岩)

이 마을이 이루어진 역사는 용천사 건립 연대인 통일신라시대로 보고 있으므로 1천여 년 전이 된다. 그러나 워낙 산간벽지며 용천사가 정유재란과 6 25때 불타 폐허가 되었으므로(1964년 용천사의 대웅전만 복구되었음) 마을 또한 발전하지 못했다. 기실 신해선(新海線)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산간벽촌도 이만저만한 벽촌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은 풍수설의 운중반월(雲中半月) 명당을 찾겠다는 꿈과 함께 살아오는 셈이다. 또한 이 마을에서부터 군락을 이루는 꽃무릇(想思花)이 한국자연 백경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마을 뒷산에 굴바위라는 동굴이 있는데 굴이 삼층으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구름과 같이 보이므로 "운암(雲岩 1789년 호구총수 지명도 동일함)"이라 했다. 마을 주위에 있는 우리말 이름의 지명 가운데 뙤밭골, 삼밭골, 녹골, 사골 등이 있는데 모두 첩첩산중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광암리 광동(光洞)

운암과 함께 1천여 년 전에 개기된 마을로 보며 최초로 황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살기 시작했다고 하나 현재 화씨는 한 세대도 살고 있지 않다.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광동(廣洞)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지금은 용천사 터에서 용이 승천할 때 이 마을 부근에서 빛을 발했다 하여 광동(光洞 1914년 행정구역 개편명)이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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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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