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창리

대창리 창서(倉西)

대창리 창서(倉西)

구전에 의하면 최초의 마을은 산 333번지 주위에 형성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마을이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1960년경에는 깨진 사기가 발견되어 그곳이 전에 마을 터였음을 짐작케 하였다. 현재의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함평이씨가 들어와 터를 잡았고 이어 진주강씨, 영광정씨, 파평윤씨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 옛날 사창제도가 있었을 때 마을 동쪽에 사창(社倉)이라는 창고가 있었는데 이에 사창(社倉 1789년 호구총수 지명) 마을이라 했고 그 후에는 사창(士昌)과 창서(昌西 1912년 지명)라 나누어 불렀으며 이 창고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창서(倉西 1914년 행정 구역명)"라 하였다.

대창리 성대(成大)

대창리 성대(成大)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안동김씨가 들어와 터를 닦고 살았으며 그 뒤로 인동장씨와 진주정씨가 들어와 살았는데 지금은 안동김씨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성대(星垈)라고 표기되었고 1912년 행정구역 지명에는 성대(星大)로, 1914년 행정구역 지명은 성대(成大)로 표기되었다. 마을 이름에 대해 전해오기로는 안동김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면서 나라에 지은 죄가 있어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며 살았기 때문에 마치 성안에 사는 것과 같다하여 "성대(城大)"라 했는데, 후에 "성대(成大)"로 변했다고 하기도 하고, 옛날에는 마을 앞의 벌판까지 마을이 이루어졌던 큰 곳이었다 해서 "성대(成大)"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그리고 창서 방죽 너머 동네라 하여 "방죽안"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는데 실은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원축동(元築洞)이라는 마을이 별도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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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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