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곡리

상곡리 모평(牟平)

이 마을은 주위에 고인돌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믿어지며 함평 모씨(牟氏)가 개촌(開村)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고 기실 함평모씨의 보첩에 임천산간좌(林泉山艮坐)에 시조묘를 비롯 2세, 3세의 묘가 있고 자양산에 4세의 묘가 있었으나 실전했다고 적고 있다. 임천산과 자양산은 모두 모평에 이웃해 있는 산으로 모평이 모씨가 개촌한 마을이라는 전언은 사실 그대로인 것으로 여겨지며 이곳은 옛 모평현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이어서 마을이름 또한 모평이라 했다. 이 마을을 비롯한 옛 다지현 일대가 마한 때 54소국중 하나였던 모수국(牟水國)일 가능성이 있다는 마한소국 위치 비정론이 있어 학계에서 모수국(牟水國)과 모씨(牟氏), 그리고 모씨와 모평(牟平)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모씨의 뒤를 이어 입촌한 성씨가 파평윤씨다. 입향조는 윤길(尹吉 1368년생)이며 세조2년(1457) 절재 김종서의 제문에 "공은 죽을 곳에 죽었도다. 천년의 긴 역사가 공으로 하여금 다시 밝아지리다(公死於死 千載之下 春秋之史 由公更明)"한 것이 세조의 미움을 받아 90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귀양갔고 귀양이 풀려 돌아오는 길에 상곡리의 산수에 흠취하여 정착했다고 하니 1460년경이다. 그 후손이 번창하여 현재는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고 개촌했다는 함평모씨들은 한 집도 살지 않는다. 이리하여 입심 좋은 어떤 이는 모평이란 이를 함평모씨에서 "牟"자를 따고 파평윤씨에서 "平"자를 따 모평(牟平)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는 고려 때이며 모평현의 모평이었음을 볼 때 잘못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서는 모평을 "牟"자를 빼고 상평지(上平地 1789년 호구총수지명) 하평지(下平地) 중평지(中平地)로 불렀으며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부터는 상모(上牟)와 하모(下牟)라고 불렀고 이후 다시 옛지명인 모평(牟平)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는데 상 하로 나누어 상모평(上牟平), 하모평(下牟平)이라고 한다.

상곡리 운곡(雲谷)

모평이 점차 커지자 파평윤씨 일가가 이주하여 윤씨촌을 이루면서 후에 상산김씨, 진주정씨, 전주리씨 등이 입촌하게 되었다. 모평의 파평윤씨 입향조 윤길(尹吉)이 골짜기에 끼이는 구름이 신선도를 보는 듯한 천하일품의 경관이라는 점에서 마을 이름을 운곡(雲谷)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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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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