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리

영흥리 영천(永川)

지금으로부터 약 250여 년 전 함평노씨가 학교면 마산에서 이곳으로 이주 정착하였으나 현재 그 후손들은 거주하지 않고 있다. 150여 년 전 인동장씨가 무안군 몽탄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현재 인동장씨가 주성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이 마을 앞에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호남선이 마을 뒤를 지나고 있으며 양옆으로 갯벌옥답의 넓은 영천평야가 펼쳐있다. 마을 주위와 영천평야를 굽이굽이 감아 도는 천이 길게 이어져 영산강으로 흐른다 하여 "영천(永川,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했다고 한다. 영천을 비롯한 영흥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목포부 엄다산면에 속했었다.

영흥리 용호동(龍湖洞)

영천과 함께 인동장씨가 150여 년 전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던 차에 한양조씨가 100여 년 전에 이주해 왔다. 마을 양편에 있는 산의 형세가 용과 호랑이의 형상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용호동(龍虎洞 1912년 행정구역지명)"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영흥리 송현(松峴)

본 마을은 남궁씨가 60여 년 전에 개촌했다고 하나 그 후손은 모두 이거했고 근래에 영천에서 인동장씨가 분가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그 후에 나주임, 수성최, 달성배, 남평문씨가 입촌하여 살고 있다. 영천에서 본 마을에 이르는 길목에 소나무가 많은 언덕(재)을 넘어 다닌다하여 소나무재 즉 소나무 송(松)자와 재 현(峴)자를 써서 마을이름을 "송현(松峴)"이라 하였다.

영흥리 흥용동(興龍洞)

나주임씨 장수공(長水公)의 4대손 언(?? 1608년생)이 1630년경에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 후에 나주정, 나주김, 창녕조씨들이 들어와 살았고 나주임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이것에 연유하여 동창마을로 불러 왔다고 하며 현재의 "흥용동(興龍洞)"이라는 마을 이름이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동일하게 표시된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불러온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서쪽으로는 무안군 봉선, 남쪽으로는 나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1921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목포부 석진면 봉산리에 속했었다.

영흥리 월산(月山)

현 정오종 소유의 밭에 칠성암(七星岩)이라 부르는 고인돌 7기가 있어 선사시대부터 이 마을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옛날에 추(秋)씨가 개촌했다는 전설과 함께 뒷산에 추씨묘로 전해오는 고분이 있으나 그 후손을 알 길이 없으며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는 성씨중에는 밀양박씨 언부(彦夫 1536년생)의 아들 응삼( 渗 1560년생)이 1590년대에 이거 정착 자작일촌을 이루었고 그 후에 나주정씨 한경(漢京 1870년생)이 100여 년 전 그리고 나주임씨가 역시 100여 년 전에 입촌하여 그 후손이 살고 있다. 마을 이름을 월산(月山이라고 한 것은 뒷산에 달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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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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