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로리

송로리 노상(路上)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 년 전 흥덕장씨 장호가 나주에서 이곳으로 이주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현재는 함평이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다. 옛부터 신계리로 통하는 길이 있고 길 위쪽에 마을이 있다 하여 노상이라고 하였다 하며 일설에 의하면 마을 뒤 산세가 해오라기 형상이라 하여 노상(鷺上)이라 쓸 것을 잘못하여 노상(路上)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앞과 옆에 석천(石泉)동(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함평군 영풍면이었음), 작은 마을이 있으나 통상 노상으로 통하여 주민이 근면하여 소득이 높은 마을이다.

송로리 해정(海亭)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전주리씨가 터를 닦고 살았으며 100여년 후에는 나주나씨가 이주하여 왔다. 그 후 금성정씨가 이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7년에 새마을 사업으로 취락구조개선 사업을 군내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여 마을 환경개선사업에 앞장선 모범마을이며 현재는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모양이 게의 형국이기 때문에 "해정(海井, 1789년 호구총수지명)"이라 마을 이름을 명하였으나 그 후 게에서 나오는 거품이 일시에 없어지므로 살림도 당대에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마을 이름을 "해정(海亭, 1912년 행정구역 개편지명)"으로 고쳤다 한다.

송로리 송촌(松村)

구전의 의하면 오래전부터 오씨가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고 하나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에 나주정씨가 무안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자작일촌을 이루며 살아왔으나 현재는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주위가 낮은 동산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동산에 소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소나무 마을이라 하여 소나무 송(松)자를 따서 "송촌(松村)"이라 명하였다.

송로리 담안(墻內)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려고 한양에서 전주리씨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그 후에 한양조씨가 이주하여 살았으며 현재는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감방산 지혈의 줄기를 받아 오선박주의 능선을 등지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있으며 옛날에는 마을 뒤에 송죽이 울창하였다 하나 현재는 흔적만 있을 뿐이며 사방의 산을 담장으로 비유하여 담장 안 마을이란 뜻으로 마을 이름을 장내(墻內,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지명)라 명하였다. 즉 우리말로 담안이다.

송로리 교회촌(敎會村)

마을의 최초 형성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당초에 4~5 가구가 산재해서 거주하였는데 8 15해방 직후 이곳에 엄다교회가 건립되면서 주민이 이주해 와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또한 엄다중학교가 건립됨으로써 선도 마을로 탈바꿈 되었다.옛날에는 "잿등:배단이(배다리)"라 하였으나 이곳에 교회가 건립되면서 "교회촌"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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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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