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다리

엄다리 성산(星山)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의 22세손 윤제(尹濟)가 은거를 목적으로 무안군 청계면 송구(松丘)로부터 이주해온 이래 그 후손이 번창하여 윤씨일촌을 형성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윤제가 이주하기 전에는 김씨, 황씨 등의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전하나 현재는 거주하지 않고 있다. 옛 선인의 꿈에 마을 앞 깊은 연못(현저수지)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용이 승천하였다하여 마을 동편을 운흥동(雲興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있는 마을)이라 하였으며 윤제가 송구에서 이곳에 정착하여 산세가 별같다 하여 서편을 별뫼(星山)라 하였는데 마을이 점차 번성하여 두 마을이 합쳐져 별뫼라 불러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마을 동편을 운흥동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무안천의 마을 앞을 유유히 흘러 영산강으로 가는 것을 보고 서천동류병화불입(西川東流兵火不入)이란 풍수설에 의한 말도 있다. 산수가 수려하여 엄다면의 낙양이라고도 한다. 성산을 비롯한 엄다리 모든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목포부 엄다산면(嚴多山面)이었다.

엄다리 번동(番洞)

구전에 의하면 700여 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나 자세한 것은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현재는 엄다면의 소재지로서 면사무소를 비롯한 각 기관이 소재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주해 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옛부터 "본골(본동)"이라 불리어졌으며 마을의 터가 오선박주에 매인 배라 하여 식수샘을 마을 밖에 파고 음료수로 사용하였다. 현재의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옛부터 불러온 본동이 와전되어 번동(番洞,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전의 지명)이라 표기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엄다리 불암( 岩)

이 마을을 개촌했다는 영양천씨 후손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천태진(千泰進, 1603년생)이 1660년경에 경남 고성군 장동면 장자리에서 이곳을 이주했다고 한다. 천씨에 이어 김씨가 들어왔고 120년 전에 林주열이 입촌했으며 1947년에 대동면향교에서 양(梁)씨가 들어와 살고 있다. 마을 후록이 오선박주(五船泊柱) 형국이어서 불상을 모셔야 한다는 풍수설에 의해 불암( 岩)이라고 했다는 설과 또 마을에 불상을 닮은 돌이 많아 불암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실지 불암이라 전해오는 바위가 마을에 지금도 있다.

엄다리 제동(濟洞)

이 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천문대에서 최근에 발굴한 마한시대의 옹관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선조 초기에 제주고씨, 황씨, 나씨 등이 주성씨를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여 오다가 1570년경 고성정씨 곤재 정개청이 나주군 곡강촌에서 이 마을에 이주한 이래 현재는 고성정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여러 성씨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처음에는 거유(巨儒)가 나왔다는 뜻에서 "거제동(巨濟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이라 불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후부터 제동(濟洞)으로 불러오고 있다.

엄다리 정동(亭洞)

구전에 의하면 처음에 터를 잡고 정착한 성씨는 황씨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그 후손들이 현재는 살고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260여 년 전에 창원화씨가 입향하여 현재 9대에 이르고 있으며, 80여 년 전에 무안박씨, 탐진최씨가 입향했으며 그 후에 한양조씨, 영성정씨 등이 약 50여 년 전에 입향하여 타 성씨와 함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이름을 처음에는 "정진해"라 불렀다고 전하나 그 연유는 알 수 없고 1912년 지명부터 정동(亭洞)이라고 표기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엄다리 신양동(新養洞)

1950년 6 25때 월남한 난민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5년 4월 20일 주택건립공사를 시작, 1956년 5월 5일 완공하여 실향민 50세대를 입주시켰고 1957년 3월 5일 2차 공사를 시작, 1957년 11월 15일 완공하여 30세대를 입주시켜 총 80세대가 마을을 형성하였다. 현재는 40여세대만이 살고 있으며 엄다면 소재지인 번동마을과 엄다국민학교와 인접하고 있다. 6 25사변 이후 전쟁 난민들이 새로이 마을을 형성하였으므로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에서 1967년 9월 15일 각 기관장 및 유지가 참석하여 "주택마을"이라고 불러오던 마을이름을 "신양동(新養洞)"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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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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