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리

금산리 감산(坎山)

정확한 개촌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창녕성씨가 개촌했다고 전하지만 그 후손이 살고 있지 않다. 성씨 뒤에 입촌한 성씨는 함평이씨며 이이현(李以玹 1612년생)이 1630년대에 입촌했고 이어 150여 년 전에 광산김씨 김기보와 풍산홍씨가 입촌했다. 조선조 때 어떤 감사가 지나가다 이곳에서 흠쾌히 쉬어 갔다 하여 감산(甘山 1789년, 1912년 지명 모두 동일하게 표기됨)이라 했는데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함평현 북 30리에 감산혈(坎山穴)이 있다는 옛 풍수설에 근원하여 마을명 "坎山"으로 쓰고 있다. 또 마을 뒷산이 말이 목말라 물을 마시는 형국이어서 갈음산(渴飮山)인데 이 갈음산이 변음을 따 "坎山"이라 했다고도 한다.

금산리 금구(金九)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운교리 판교의 한양조씨 일부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각각 다른 성씨가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홍수 피해를 자주입어 마을을 폐촌시키고 1979년 새마을 사업 취락 개선 사업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마을주민모두가 옮겨 새마을을 이루었다. 풍수지리설상 산형이 금거북이가 물을 찾아 내려가는 형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금구(金龜 1789 호구총수 지명도 같이 표기)"라 하였으나 거북 "龜"자가 쓰기가 까다로워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今九"로 표기하다가 근년에 이르러 "金九"로 쓰고 있다.

금산리 녹파(綠坡)

해방전에 김병섭이 자기 농장 땅에 집을 짓게 하고 소작료를 적게 받으니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씨들은 자기 땅에 목장과 과수원을 개발하기 위해 입촌했다. 1967년에 마을 뒤에 대광국민학교가 세워졌으며 마을 이름 녹파(綠坡)는 김병섭의 호이다.

금산리 노적(老迪)

마을 북편 삼거리의 전주리씨 선산에 백제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원형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곳에 일찍이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이 마을은 전주리씨 수운(守雲 1621년생)이 영광 묘랑에서 이거 정착했고 이어 김해김씨 재운(滓運 1767년생)이 들어왔다. 전주리씨와 김해김씨가 주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원래 이 마을은 마을 서편에 탑(塔)이 있어 탑동(塔洞 현재 대석만 남아 있음)이라 했다하며 이후 탑동과 관련지어 복덕동(福德洞 1789 호구총수지명)이라 불렀고 다시 앞산이 노적을 쌓은 듯 보여 노적(露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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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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