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리

용성리 용연(龍淵)

이 마을에는 김해 김씨 중태(重兌 1719년)가 들어와 개촌했고 이어 한양 조(趙)씨가 들어오고 근년에 여러 성받이가 입촌하였다. 마을의 위치가 함평천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하천 옆에 큰 연못이 있어 그곳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큰 비가 내리면 하천 물이 많아져 용이 나와 함평천 상류를 가로질러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하천에 제방을 막아 놓은 것처럼 하천물이 용의 몸뚱이를 넘었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이름을 "용연(龍淵 1789년 호구총수 지명도 동일하게 표기함)이라 불렀다고 한다.

용성리 구룡동(九龍洞)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인 효종 때 괴정에 입촌했던 이두삼(李斗三 1677~1728)이 현 괴정에서 살다가 이주,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이 마을은 원래 현 괴정과 구룡을 합쳐 볼 때 주위의 산 모양이 두 마리의 용(二龍)이고 운교리 마량에 있는 갈구지(현 대동저수지에 수몰됨)는 거북이라 하여 거북 구(龜)자와 용(龍)자를 붙여 "구룡(龜龍)"이라 불렀는데 이두삼이 마을을 이루면서 "구룡동(九龍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 동일하게 표기함)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용성리 정창(正昌)

마을 안골에 있는 고총들이 모두 남(南)씨의 선조묘라고 전해오는 등 오랜 옛적부터 남씨가 자작일촌하며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후손이 없어 확인할 수가 없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성씨로는 김해김씨가 200여년으로 가장 오래 되었고 다음으로 전주리씨, 함평이씨가 각각 100년이고 경주김씨 밀양박씨등은 50년 내외이다. 마을에 정주한 성씨들의 내역을 살펴 특기할만한 일은 백년이상 뿌리를 내린 씨족은 모두 윗지역인 서호, 연암리에서 이주해온 성씨며 50년 내외의 성씨는 아랫 지역에서 이주해온 성씨다. 전설에 의하면 금성동이 성(城)의 역할을 할 때 이 마을에 향교와 같이 교육을 담당하는 큰 서당이 있었고 그 서당 자리가 현 이건주(李建宙)의 집터였다고 하며 마을 앞 남쪽에서 논을 일구다가 백제토기 10여점을 발굴한 것을 보면 마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원래는 정창(定昌)으로 썼다는 얘기가 있으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정창(丁倉)으로 표기되어 있어 당시 국가의 창고가 있었지 않나 여겨진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일인들에 의해 정창(正昌)으로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성리 금성동(金城洞)

금성산(金城山)이 소쿠리 테처럼 에워싸고 있는 아늑한 마을로 산성(山城)의 유래가 정확히 나타난 문헌이 아직 없다. 단 통일신라시대 왕자를 비롯한 왕족에게 지방의 군현을 녹봉으로 주어 살게 했는데 성명 미상인 녹봉을 받은 자가 이곳에 성을 쌓고 쇠벽같이 튼튼한 성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삼면이 산성으로 둘러싸이고 평지와 접한 마을 어귀에 문루가 있었을 성터가 지금도 완연히 남아 있고 옥터 동헌등의 이름이 전해오며 이 마을에서 200여 m 남쪽에 위치한 정창마을에 향교터라는 지명이 전해오며 지금 그 위치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금성동 주위에 읍두정(邑頭亭 1789년 호구총수 지명)이란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한 때 함평의 옛 현치소가 이곳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 군청소재지인 함평읍 보다 금성동 남쪽 일대에 고인돌이 많이 있고 함평읍 소재지 거의가 전에는 물에 잠겨 있었다는 확증이 있으며 기산산성이 읍성이 아닌 산성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일면(一面)이 평지와 접한 금성은 읍성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의 치소였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덕산리가 면소재가 될 때까지는 이곳이 대동면 소재지였다. 이 마을은 고려초에 밀양손씨가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증할 자료가 없어 믿을 수 없고 손씨에 이어 입촌 근200여 년 간 살았다는 함평모씨는 100여 년 전에 그 후손이 모두 이 마을을 떴지만 모씨의 고총이라 전해지는 무덤이 있어 확증이 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이어 밀양박씨가 들어 왔는데 박씨의 입향조는 우혁(佑爀 1710년생)이며 1730년대다. 박씨와 거의 함께 입촌했던 최씨들은 그 후손이 10대를 이 마을에서 살다가 3년 전에 1호도 남김없이 떠났고 배(裴)씨 또한 10대를 살다가 6년 전에 모두 떠났다.

용성리 괴정(槐亭)

효정 계미년(癸未 1703)에 문과에 급제하여 양산군수를 지낸 함평이씨 이두삼(李斗三 1677~1728)이 1700년쯤 나산에서 이 마을로 이주하였고 이어 이씨의 외손인 제주양씨가 거의 동 년대에 이주했다. 양씨는 1호가 살고 있으나 집만 두었을 뿐 이거한거나 마찬가지다. 밀양박씨는 박화연이 100여년전에 입촌했다. 원래 이 마을 이름은 구룡(龜龍)이었는데 이두삼이 입촌하여 "九龍"으로 바꾸었고 이두삼이 현 구룡마을으로 이사하면서 마을 이름까지 가지고 가 그곳을 구룡 마을이라 하므로 마을 앞에 심어진 네 그루 느티나무에 시원한 정자가 지어 있어 괴정(槐亭)이라고 했다하는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괴동(槐洞)으로 표기되어 있고 1912년 지명에는 "槐丁" 1914년 행정구역 지명에는 오늘날과 같이 "槐亭"으로 표기되어 있다. 네 그루의 당산나무 사이에 지은 정자는 보수와 중수를 거쳐 오다 퇴락하여 근년에 새로이 지어 여름 한 철 시원한 휴식처로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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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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