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리

덕산리 아차동(牙次洞)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밀양박씨와 여산송씨가 정착하여 살아오다가 그 후 함평이씨, 김해김씨 등 여러 성씨가 이주해와 거주하게 되어 현재의 마을을 이루었다. 이 마을은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아차동(牙次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함평 고을에 소식을 전하기 위한 통신수단으로 지금의 함평 공원 자리에서 이 마을을 향해 나팔을 불면 그 나팔소리를 듣고 또 다른 마을에 그 뜻을 나팔로 전해주는 역할을 맡았던 곳이라 하여 "아차동(衙次洞)"이라 불렀다 한다.

덕산리 고산동(高山洞)

전설에 의하면 고려 때부터 개기되어 마 장 두 성이 거주하였다 하며 선조 때 김해김씨 수(遂 호:화죽당)가 임진왜란을 피해 이 마을에 거주하였고 그후 영조 때인 1770년경 함평이씨 희맹, 희증, 희규 3형제가 나주 초동으로부터 입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산봉(高山峯) 기슭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고산동(高山洞)"이라 하였으며 지금은 상고산과 하고산으로 나뉘어졌다.

덕산리 내덕, 외덕(內德, 外德)

고려말기에 여씨가 살았다 전하며 그 후 성균관 진사였던 광산김씨 김보(金 1537~1570)가 전북 무장에서 1570년경 이곳에 정착하여 현재 18대손까지 이어 왔으며 크게 번창하였다. 처음에는 "덕여촌(德余村)"이라 불리다가 자손이 번창하여 마을이 커지자 내덕여(內德余)와 외가여(外加余)로 불렸으며(1789년 호구총수 지명)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덕(內德)과 외덕(外德)으로 바꿨다. 지금은 행정운영구역도 덕산 3, 4리로 분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대동면 소재지였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1974년 말에 소재지가 향교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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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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