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리

향교리 향교(鄕校)

고려 때 현 향교리 중교 마을터의 원곡에 임(함풍 임?)씨가 몇 가구 살았고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인조때에 함평이씨 이양휴(李良休)가 향교 뒷산에 올라가 국지사와 함께 집터를 물색하는데 국지사가 현재의 향교 명륜당 자리가 충신이 나올 터라 하여 이곳에 함평읍 내교리에 있던 향교를 옮겨 짓고 명륜당 우측 북쪽 바위가 많은 곳(이 일대의 바위는 모두 고인돌이다)에 집을 지었으나 재앙이 있어 지금의 중교 마을에 천막을 치고 살게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자손들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자손들이 번창하여 터를 넓혀 나간 결과 동교(東校), 상교(上校), 중교(中校), 남교(南校), 서교(西校), 명교(明校) 6개 마을으로 분리되었는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을 보면 하교와 중교 뿐이다.

향교리 고시(古市)

여양진씨와 창년조씨가 먼저 터를 닦았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함평노씨 겸(謙 1507년생)이 1530년경에 입촌하였고 약 200여 년 전 함평모씨가 입주했으며 나주김씨가 다시 입주하여 오늘날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에 보면 이 마을은 동현내면에 속했고 고시(古市)라 표기되어 있으며 그 후 무안현 좌촌면에 속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동면 향교리에 편입되었다. 무안현에 편입될 때 마을의 일부는 고이(古耳)로 바뀌어 함평군 기성면에 편입된 듯 하다. 원래는 마을 근처에 괴목과 시목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괴시(槐枾)"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고 함평노씨 입향조 겸(謙)의 호 괴음(槐陰)에서 괴자를 땄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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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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