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리

강운리 송산(松山)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해주최씨가 터를 잡고 거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6 25때 소개지가 되어 외지에 나가 살다가 수복 후에 다시 입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강운리 복산(福山)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미만에 해주최씨가 송정 마을에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마을 앞 당산나무는 마을형성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한다.마을 앞산이 조리봉이라 하여 복조리의 복(福)자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여 산(山)자를 넣어 "복산(福山)"이라 불렀다 한다.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는 평능면에 속했었다.

강운리 홍지(鴻池)

마을을 이룬지는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이며 5세대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하나 그 내역은 알 수 없으며 30년 전 정부 이주 주택 11동이 신축되어 난민들을 이주시켜 정착하여 살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마을은 적으나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다. 1912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홍지(弘池)로 표기하고 있는데 행정구역 개편 후에 풍수지리설상 마을의 산이 기러기 형이며 터는 못 형이라 하여 홍(鴻)자와 지(池)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홍지(鴻池)"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동현내면에 속했다.

강운리 주평(周平)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전주리씨 경(香景 1730년생)이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는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주평이 나오지 않는데 오소리(五所里)가 이곳이 아닌가 한다. 후에 풍수지리설상 마을의 형상이 뭍에 뜬 배와 같다 하여 "주평(舟平 1912년 행정구역 개편 지명)이라 불렀다 한다. 또 도로를 경계로 윗마을을 상강(웃 강정이)이라 하고 이 마을을 아랫 강정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목포부 금동면이었다.

강운리 상강(上江)

이 마을은 담양전(田)씨, 흥닥장씨, 해주오씨, 연안이씨등이 득세한 마을로 맨 먼저 입촌한 사람은 담양전씨 세균(世畇)이며 입촌 연대는 1570년경이다. 세균의 아버지 실(實)이 사포(沙浦)에 일시 살았던 행적이 있으나 상강(上江) 개촌은 묘소가 이곳에 있는 세균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세균은 그의 딸을 문평면의 호남 명족인 금성나씨 나세찬(羅世纘)에게 출가 시키는 등 당대 함평지방의 명족(名族)으로 부상시켰다. 흥덕장씨는 장천구(張天龜 1761~1829)가 외가인 담양전씨를 찾아 입촌했고 이 마을에 들어와 1852년(순조조)에 장인택(張仁澤)이 문과에 급제 광주부사를 역임하는 등 그 후손이 득세 했으며 오씨는 150여 년 전, 연안이씨는 오씨의 뒤를 이어 입주 정착했다. 이 마을은 고산봉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여울에 정자가 세워져 있었기에(지금도 정자터가 있음) 강정(江亭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동일하게 표기됨)이라 했고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강정(江丁)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다시 강정(江亭)으로 표기했으며 그 후 강정을 윗 강정, 주평을 아랫 강정으로 주민들이 즐겨 부름에 따리 지금은 상강(上江)으로 쓰고 있다. 또 이곳을 별명으로 부를 때 "삼등터"라 하는데 이는 담양전씨와 흥덕장씨, 해주오씨, 세 성받이가 득세한 벼슬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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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9-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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