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리

금곡리 나막(羅幕)

마을 바로 앞 도로변에 27기의 고인돌이 있고 마을 서쪽 200m 지점의 동암으로 통하는 도로 고갯마루에 백제 돌널무덤 2기가 있는 등 주위의 문화유적으로 미루어 볼 때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 후손이 살고 있는 성씨로 함평 노씨가 맨 먼저 입촌했고 14대째 생활의 안주처로 삼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광산김씨로 역시 14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광산김씨 입향조는 병조좌랑을 지낸 학교면 월산리 입향조 자보(自普)의 현손(玄孫)인 선(銑. 1562~1633)이며 임진란 전에 입촌했다. 마을을 안고 있는 뒷산 철성산(鐵城山)의 암벽이 비단 병풍을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나막(羅幕 1789년 호구총수 지명도에도 동일하게 표기)이라고 했다 하는데 한일 합방 후 일인들이 남악(南岳 912 행정구역 개편 지명)이라 표기하였으나 지금은 옛 표기 "羅幕"으로 쓰고 있다. 나막이란 지명은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을 것 같으나 제시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아직 없다. 나막의 동남쪽 1.5km 지점에 같은 금곡리에 속하는 마을으로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마을이 있다.철성산성 동쪽에 있는 막사여서 "東幕"이라고 했다면 "羅幕" 또한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군내 지명으로 "幕"자가 붙어있는 곳은 대굴포 전라수영터의 동쪽에 "東幕" 금성산성의 북동편에 역시 "東幕" 철성산성의 남동에 "東幕" 그리고 이 마을 "羅幕"이란 지명이 있다.

금곡리 금곡(金谷)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이전에 여산송씨가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후 이천서씨 익선공파인 경개(景介 1582년생)가 1600년경 무안에서 이거 정착하였다. 마을 뒷산의 명칭이 금곡산(金谷山)이며 산 아래 서쪽 마을을 금적골(金積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 동쪽마을을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이라 부르다가 금적골(金迪洞 1912년 행정구역 개편명)과 금곡(金谷 1912지명)으로 나누어졌으며 1914년에는 금곡을 월곡(月谷)으로 바꾸었고 그 후 금적골과 월곡을 합해 금곡(金谷)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은 지명 그대로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금을 캐는 광산이 여럿이었고 금곡리 430번지 일대가 금을 정선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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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8-01-0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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