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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삼국시대

삼국시대(三國時代)

함평이 완전히 백제의 영역이 된 해는 아직 분명치 않다.

현재 학계에서는 반설화적(半說話的)인 일본 서기(書記)의 기록에 의해 영산강 유역이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24년(369)에 합병되었다고 하고 있으나 진서(晋書)에 안북장군(安北將軍) 장화(張華)가 “마한의 신미제국(新彌諸國)은 산에 의지하고 바다를 끼고 대대로 서로 합치지 않은 채 20여개국이 살아 오는데 모두 사신을 보내 조헌 한다”고 한 점과 함평 지역에서 3∼5세기에 이르는 한성백제(漢城百濟)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점, 초대형 고분 분포 등으로 미뤄 볼 때 369년 이후에도 백제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동성왕 20년(498) 8월에 탐라(耽羅.濟州道)를 치기 위해 왕이 친히 무진주(武珍州.光州)에 머물었던 이후부터 완전히 백제의 지배권에 들어 간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는 굴내현(屈乃縣)과 다지현(多只縣)을 설치하였다. 663~671년 백제가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후 당(唐)이 7주를 설치하였는데 굴내현 지역에 군나현(軍那縣. 대동지지 屈奈縣)을 설치하고 대방주(帶方州)의 속현으로 하였고 다지현(多只縣) 지역에 다지현(多支縣)을 설치 사반주(沙拌州)의 영역으로 하였다.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757년(景德王 16) 굴내현을 함풍현(咸豊縣), 다지현을 다기현(多岐縣)으로 바꾸고 물아혜군(勿阿兮郡)의 속현으로 하였다.

후백제시대(後百濟時代)

892년(眞聖王 6) 견훤(甄萱)의 기병(起兵)에 의해 후백제 세력권에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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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8-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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