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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및 삼한시대

선사 및 삼한시대

선사시대(先史時代)

지금까지 함평 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는 나주군 다시면(多侍面) 영산강 지류의 부식토에서 벼의 꽃가루를 채집하여 분석한 결과 쌀의 생산 연대가 약 3,000 BP(BC 1,050)로 밝혀졌으며 유역 지형 보존실태 조사에서 약 4,000년전 부터 이곳 일대가 사람의 손에 의하여 파괴 또는 개간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비추어 신석기시대는 물론 구석기시대에도 함평 지역에 사람이 살았으며 그 유적이나 유물이 있을 것이나 아직 발견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삼한시대 - 三韓時代)

원삼국시대에 함평은 마한의 영역에 속했는데 마한은 54개소국(小國)으로 형성되었었다. 그 중에 1~2개의 소국이 함평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학계에서 국명(國名)을 비정(比定)한 바가 없다. 마한시대에 1~2개의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유적인 고인돌이 1990년말 현재 600여기(파괴,매몰한 200여기 제외)가 군내에 분포했고 138기의 고분이 함평천과 고막천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 점이다. 그간 발굴 수습된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나산면 구산리 돌칼, 나산면 초포리, 월야면 월계리의 반달돌칼, 학교면 월산리의 꺽창(銅戈), 학교면 백호리 출토의 칼자루 장식이 있고, 1987년 2월 나산면 초포리 사촌(羅山面草浦里沙村) 마을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발굴된 마한시대에 편년되는 기원전 2~3세기의 청동기 유물은 이 지역에서 청동기를 제작 할 수 있는 집단이 살았음을 입증해 주는 자료며 남북한을 통틀어 청동기 발굴 사상 첫 손 꼽히는 경사였다. 또 1995년 1월부터 4월까지 1차 발굴하여 2~3세기의 독(옹관) 등 다수 유물이 출토된 월야면 예덕리 만가촌(月也面禮德里萬家村) 고분은 고대 마한사 뿐만 아니라 일본(日本) 전방후원분 조형(前方後圓墳祖形)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는 귀중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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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감사실 기획정책담당
최종수정일
2017-08-1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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