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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의 유래

함평 전경

함평의 유래

함평(咸平)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태종 9년(太宗.1409)에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통합하면서 함풍에서 “咸”자를, 모평에서 “平”자를 따 “咸平”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속되어 무안군인 해제면(海際面), 현경면(玄慶面), 지금의 광주광역시 본양동(本良洞), 임곡동(林谷洞)의 일부,장성군 동화면(東化面) 일부, 영광군 묘량면 일부까지가 함평군역(咸平郡域)이었다.

이 지역에는 백제때부터 고려때까지 6개의 현(縣)과 향(鄕), 부곡(部曲) 각 각 1개소가 있었는데 시대 마다 바뀐 이름은 다음과 같다.

함평의 백제때부터 고려때까지 시대마다 바뀐 6개의 현과 향, 부곡의 이름을 설명한 표입니다.
1 백제 때 굴내현(屈乃縣)은 지금의 함평읍, 손불면, 신광면, 대동면 지역인데 백제 패망후 당(唐)이 7주를 설치했을 때는 군라현(軍那縣, 대동지지는 굴나-屈奈-로 표기)이라 하였고 대방주(帶方州, 치소?현 다시면)의 속현으로 하였는데 당의 7주는 671년 까지 존속하였다. 신라와 고려 때는 함풍현(咸豊縣. 고려 때 별호 기성 -箕城-)이라 불렀고 신라 때는 무안군, 고려 때는 영광군의 속현(屬縣)이었다.
2 백제 때 다지현(多只縣)은 지금의 나산면, 해보면, 월야면 지역인데 당의 7주 때는 다지현(多支縣)이라 하였고 사반주(沙拌州. 치소, 장성 또는 영광)의 속현 이었으며 신라 때는 다기현(多岐縣)으로 무안군, 고려 때는 모평현(牟平縣. 고려 때 별호, 모양 -牟陽-)으로 영광군의 속현이었다.
3 백제 때 도제현(道際縣)은 오늘의 무안군 해제면(海際面. 오늘의 임수리 제외)과 현경면(玄慶面. 옛 다경면 지역 제외)인데 신라와 고려 때는 해제현(海際縣)이라 했고 신라 때는 무안군, 고려 때는 영광군의 속현 이었으며 조선조 태조 원년(太祖.1392)에 함풍현에 병합되었고 1906년 무안군에 이속되었다.
4 백제 때 고록지현(古祿只縣)은 지금의 무안군 임수리(臨水里)와 인근 섬 지방인데 신라 때는 염해현(鹽海縣)으로 압해영현(壓海領縣), 고려 때는 임치현(臨淄縣)으로 영광군의 속현이었다가 태조 원년(1392)에 함풍현에 병합되었고 1906년 무안군에 이속(移屬)되었다.
5 백제 때 물아혜군(勿阿兮郡. 물아래)의 일부였던 지금의 학교면과 엄다면은 신라 때는 면주(綿州), 고려 때는 물양군(勿良郡.994), 면성군(綿城郡.991)으로 바뀌었고 조선조에는 무안현(務安縣), 1895년에 무안군, 1897년에 목포부(木浦府)에 속했다가 1914년 함평군에 편입되었다.
6 백제 때 수천현(水川縣)은 오늘의 광주광역시 본양동(本良洞)과 임곡동(林谷洞) 일부 장성군의 동화면 일부 인데 신라 때는 여황현(艅?縣)으로 나주목의 속현이었고 고려와 조선조에는 나주목 이었으며 1906 함평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여황, 적양(赤良), 장본면(獐本面. 현 본양동)은 나주군, 뒤에 광산군, 광주광역시로, 오산면(烏山面. 현 임곡동)은 광산군에, 뒤에 광주 광역시로, 대화면(大化面)은 장성군 동화면에 편입되었다.
7 특정 행정구역이었던 다경부곡(多慶部曲. 귀화인 촌)과 영풍향(永豊鄕)은 신라 때부터 시행하였고 조선조 태종 때에 모두 폐지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함평의 향, 부곡은 고려 때부터 언급되고 있다. 다경부곡은 오늘의 무안군 현경면 동산(東山), 평산(平山), 외반(外盤), 송정(松亭), 수양(垂陽), 용정(龍井), 오류(五柳), 마산(馬山), 가입리(加入里) 지역으로 고려 때는 나주목이 관할하다가 고려 공양왕 3년(恭讓王.1391)에 함풍현의 감무(監務)가 관할하였다.
8 영풍향(永豊鄕)은 지금의 함평읍 일부인 옛 영풍면 지역 으로 이 지역 역시 나주목에서 관할하다가 고려 공양왕 3년(1391)에 함풍현의 감무가 관할하였다. 향청의 소재지는 현 함평읍 성남리 골샘 인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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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8-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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